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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 한 조각

나의 주님...

아리마대 사람 2017. 10. 12. 15:26

"주여 세번 외치시고 기도하겠습니다"
교회에서 기도를 시작할 때 인도자가 흔히 하는 말이다. '주여'를 세번 외치고 기도를 시작하는 것은 '한국식 기도'라고 알려져 있으며, 이제는 널리 알려져서 중국이나 일본등에서 진행되는 다국적 집회에서도 기도를 시작할 때 곧잘 사용된다고 한다.
주님...
임금이나 왕, 혹은 주인을 뜻하는 '주'에 존칭을 나타내는 접미사 '님'을 붙여 우리만 방식의 높임말인 '주님'이 된 것이다. 특별히 '나의 주님'이라는 표현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감히 부르지 못하고 그 이름을 대신하여 사용한 호칭이기도 하다. 이는 히브리말로는 '아도나이'라고 한다. '아도나이'라는 호칭은 특별하게 사용되기도 했는데,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입에 올릴 수 없었던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고, 히브리어는 자음으로만 이루어진 특성이 있으므로 하나님의 이름의 나타내는 4글자의 자음(테트라그라마톤, 신명사문자)에 '아도나이'의 모음을 끼워넣어 지금 우리가 알고있는 '여호와'라는 호칭을 만들었다고도 한다.
주님...
왜 우리는 하나님을 주님이라고 부를까? 그리고, 주님이라는 호칭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 호칭일까?
사전을 통해 '주(主)'의 뜻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기독교에서 구세주(救世主)와 동일한 뜻으로 사용하는 말로서 세상의 악이나 위험으로부터 인류를 구원하는 주인이라는 뜻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이르는 말이다.
2. 기독교에서 하나님 또는 예수를 이르는 말로서 만백성의 주인이라는 뜻이다.
이와 같이 국어사전에도 기독교에서 사용하는 말로서 정의가 나타나 있다.
기독교에서는 왜 이 말을 사용하고 있을까.
다른 많은 우리말 단어들처럼 한자에서 비롯된 말이며, 한자 '主'로서 쓰여진다. 기독교에서는 구세주, 만백성의 주인이신 하나님, 예수님을 부르는 호칭으로서 사용하고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그 뜻은 기본적으로 임금이나 왕, 혹은 주인이다. 그러니까, 기도할 때 "주여!"하고 부르는 것은 곧 나의 '임금', '왕', 또는 '주인'이신 하나님을, 예수님을 부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님'을 부르며 기도하는 나는 왕의 '신하' 또는 주인의 '종'이 된다. 기도할 때마다 '주여'를 부르는 것은, 실은 내가 '신하'이고 '종'이라는 의미인 것이다.
그런데, 엄밀하게 따져보자면 나를 '신하', '종'이라고 하는 것조차도 실은 내 자신을 매우 높이고 있는 것이다.
 
(로마서 9:20-21)
20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왜냐면, 나는 하나님께서 빚으신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좀 더 객관적으로 말하자면, 내 뜻과 의지가 개입될 여지가 전혀 없는 피조물, 내 신분과 용도를 주장할 권리가 전혀 없는 피조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피조물이 스스로를 가리켜 창조주의 '신하'이자 '종'이라고 주장하는 것조차도 실은 피조물로서는 스스로를 매우 높인 것이 된다. 피조물이 스스로를 가리켜 어떤 것, 어떤 자격으로 정의했다는 점만으로도 피조물로서는 분수에 맞지 않는 행동인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기도할 때마다 피조물인 나는 하나님을, 예수님을 나의 '왕', 나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내 자신을 그분의 '신하', 그분의 '종'으로 인정한다. 이 말 속에는 아마도 내 자신이 피조물임으로 인정하는 태도가 채워져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신하'와 '종'은 어떠한 존재인가.
신하와 종은 무엇이든 자신의 뜻대로 하지 않는다. 자신의 뜻대로 할 수가 없다.
신하와 종은 무엇을 하든지 왕의 뜻대로, 주인의 뜻대로 행한다. 신하와 종은 어디를 가든지 왕을 따르며, 주인을 따른다.
이렇게 순종하는 것이 신하와 종이 마땅히 행할 바이다.
만일, 신하 또는 종이 왕의 뜻을 따르지 않고, 주인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는 더이상 신하나 종이 아니다. 스스로가 왕이고 주인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창세기 3:5-6)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이사야 14:13-14)
13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14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사람이 죄를 지은 것, 사단이 죄를 지은 것, 모두가 신하이자 종인 자신의 본분을 망각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왕이자 주인이신 분께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은 "하나님과 같이 되어"진다는 말에 솔깃하여 죄를 짓고 죄인이 되었다.
천사는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는 생각을 품어 구덩이 맨 밑에 떨어지게 되었다.
성경은 이렇게 순종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말씀한다.
 
(잠언 14:35)
35 슬기롭게 행하는 신하는 왕에게 은총을 입고 욕을 끼치는 신하는 그의 진노를 당하느니라
 
나는 신하이다. 나는 종이다.
내게는 왕이 계시고, 주인이 계신다.
기도할 때마다 '주여'를 부르는 것은 이 사실을 다시 한번 떠올리고 잊지 않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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