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속에 잠깐 스쳐가는 말씀 한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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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 한 조각

똑똑한 사람들

아리마대 사람 2017. 11. 22. 14:28

어제는 뉴스에서 '서울대'의 이름이 들어간, 그것도 '서울대 교수'의 이름이 들어간 기사를 2건 읽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은 대학교, 가장 영향력 있는 대학교이니 언론에 보도되어도 이상한 일이 아니고, 오히려 당연한 일인데, 정작 보도내용을 보니 전혀 그렇지 못하였다...

 

한가지는 "아들이 고교 1학년일 때부터 아들의 이름을 논문의 공저자로 올린 서울대 교수"의 뉴스였다.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의 교수가 자신의 아들이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2008년부터 총 43편의 논문에 자신의 아들을 제1저자, 혹은 공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아들은 공부를 잘해서 이후에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에 진학했고, 2015년에는 대학원에까지 진학했지만, 다른 연구실에서 공부하는 가운데에도 계속적으로 논문의 '공저자'로 등록되었으며, 아버지의 추천으로 학과에서 연구실적이 우수하다고 상과 상금까지 받았다.

사실관계가 밝혀진 후, 아들의 수상은 취소되었고, 부자가 함께 참여한 논문의 경우 교수인 아버지의 실적으로 인정하지 않기로 결정됐으며, 결국 아버지는 사직서를 냈다.
아버지인 교수는 자신의 아들이 연구실 학생들과 친밀한 사이라 연구실에 자주 들러 일을 거들었으며, 대학원생들이 격려 차원에서 이름을 넣어준 것도 있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또 한가지는 "미국에 있는 자기집을 ‘에어비앤비’로 등록해서 4천만원을 횡령한 서울대 교수"의 뉴스였다. 

국내 유일 기초과학 연구기관인 기초과학연구원(IBS) 연구단장직을 맡은 서울대 교수가 지난해 7월 IBS 연구단장에 임명된 뒤 100차례 이상 해외 출장을 다녀오는 과정에서 미국 뉴저지주에 있는 본인과 아내 공동명의의 주택을 숙박공유 사이트 ‘에어비앤비’로 등록해서 숙소로 예약하고, 귀국 후에는 외국 숙소에 묵은 것처럼 신고해서 4000만원 상당의 출장비를 유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실관계가 밝혀진 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해당 교수를 연구비 횡령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서울대 측은 “서울대가 아니라 IBS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지금 단계에서 학교 차원의 징계를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대한민국의 모든 고등학생들이 입학을 바라는 곳, '서울대'. 그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라면 우리나라 내에서는 지적으로 가장 우수한 사람들일텐데, 이런 유치한 뉴스로 보도된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왜 그랬을까...

우선,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능력이 지적능력만큼 발달된 상태가 아닌 것 같다. 이런 경우에 대해 너무도 흔한 언급이지만.

가치관이라는 것이 애초에 바르게 정립되지 못했을 수가 있다. 교육과정을 거치는 동안, 국, 영, 수를 위주로 예습, 복습에만 열중하다보니 바른생활이나 도덕, 사회 등의 과목을 소홀히 했을 수가 있다. 물론, 공부를 잘 한 사람들이니 전과목 성적은 우수했을텐데, 교과내용을 암기하는 데에만 치중하고 정작 배운 바를 실생활에 적용하는 데에는 소홀했을 수가 있을 것 같다는 것이다.

또는, 살아오는 동안 가치관이 무뎌진 상태일 수도 있다. 사회적 지위와 명성, 이에 따른 존중과 대접을 받다보니 판단력의 근간을 이루는 양심과 도덕에 지방이 끼고, 이것이 비대해져 기능저하가 생길 수가 있는 것이다. 기능이 저하되다보니 아들의 이름을 논문저자로 추가한 일, 숙박비를 횡령한 일 정도에는 전혀 죄의식을 갖지 못했을 수가 있는 것이다. 요즘은 워낙 잔혹한 범죄나 대규모 범죄가 많다 보니 이 정도의 '범죄'는 잡범에 속하지 않을까 싶은 세상인지라...

또 한가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자신의 똑똑함을 과신한 것이 아닐까 싶다.

살아오면서 똑똑한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다. 학창시절을 거치며 진학을 할 때마다, 새롭게 겪게되는 똑똑한 사람들은 놀라움의 대상이었고, 심지어 부러움의 대상이 되곤 했다. 이렇게 학창시절에 만난 똑똑한 친구들은 자극이 되었으며, 이로부터는 대체로 좋은 영향을 받았다고 기억이 된다.

직장생활에서 경험한 '똑똑함'은 좀 달랐다. 학교에서 만난 똑똑한 친구들은 새로운 지식의 습득능력이 뛰어나거나 부지런하고, 배운 것을 활용하는 데에 뛰어난 친구들이었는데, 직장에서 만난 똑똑한 사람들은 알고 있는 지식을 잘 표현하는 쪽에 재능이 있었다. 학생과 직장인의 업무가 상이함에 따른 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직장에서는 좀 더 재미있는 부류의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똑똑하기는 한데, 그 의중이 뻔히 보이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눈에 뜨이기 위해 자기 업무영역이 아닌 곳에서 활동을 하거나, 다른 사람의 결과를 이용하거나, 윗사람 앞에서의 말과 행동이 평소와는 다른 사람 등의 경우이다. 이런 경우, 단기적으로는 눈에 뜨이고 칭찬을 받는 경우가 많으므로 스스로가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똑똑하다는 점을 과신하는 경우의 문제점은, 자신을 향한 주변의 시선이 어떠한지를 살피지 못하게 된다는 점과 다른 사람은 자신처럼 똑똑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의 정도가 심해지면 다른 사람을 무시하게 되고, 그 결과 본인이 가장 어리석은 말과 행동을 저지르게 된다.

"아들이 고교 1학년일 때부터 아들의 이름을 논문의 공저자로 올린 서울대 교수"의 경우, 자신의 아들이 연구실 학생들과 친밀한 사이라 연구실에 자주 들러 일을 거들었으며, 대학원생들이 격려 차원에서 이름을 넣어준 것도 있다는 취지로 해명을 했다고 하는데, 논문을 발표하는 데에 있어서 저자 혹은 공저자로 이름을 올린다는 의미가 결코 가볍지 않음을 다른 사람들도 조금이나마 이해할 것으로 생각했다면 저렇게 조악한 해명은 꺼내놓지를 않았을텐데, 얼마나 다른 사람들을 쉽게 생각했으면 저런 해명을 할까 싶다.

"미국에 있는 자기집을 ‘에어비앤비’로 등록해서 4천만원을 횡령한 서울대 교수"의 경우에도, '꼬리가 길면 잡힌다'는 흔한 속담을 무시한 채, 푼돈벌이에 열중하다가 망신을 당한 경우로 생각된다. 불과 1년 남짓한 기간동안 100차례 이상 해외 출장을 다녀오면서 늘 일정한 장소에서 묵었을텐데, 다른 사람들이 그 점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나 싶다.

물론, 저 사람들만 탓할 수는 없다. 고등학생의 이름이 들어간 논문, 타 연구실의 논문에 이름을 올린 경우 등도 인정해서 시상까지 했다는 학과측의 어리석음, 1년 남짓의 기간 동안 100차례 이상 출장을 다니는 데도 승인해 준 연구원측의 둔감함, 학교 외의 기관에서 일어난 일이니 학교에서는 징계를 검토하지 않는다는 학교측의 방관도 저들의 '혼자만 똑똑한 행위'를 방조하는 데 기여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자신이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것. 정신건강의 중요 요소 중 하나가 자존감이니 마냥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요즘의 사회 속에서는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필요한 덕목일 수도 있다. 다만, 문제점은 다른 사람은 똑똑하지 않다고, 나아가서는 어리석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것이 생각 속에 자리잡게 되면 점차 죄의 씨앗인 교만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래서, 성경은 교만의 최후를 말씀하고 있다.

 

(잠언 16:18)
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국어사전적 의미에서 교만하지 않는 것, 곧 겸손은 흔히 현대사회에서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겸손하면 수많은 교만 가운데에 파묻혀 마치 존재가 잊혀지는 것인 양 가르치며, 오히려 어리석고 구태의연한 가식으로 치부해 버리곤 한다. 그러나, 실은 겸손이 진정으로 자신을 드러내게 하는 미덕이다.

 

(잠언 18:12)

12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

 

이는 또한 하나님의 자녀인 그리스도인에게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다. 자신을 높이고 자신을 알리고자 하는 죄의 본성을 이겨야 하므로, 죄에 대하여 십자가에서 죽은 그리스도인으로서만 가능한 일이다. 바울은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라'는 아주 쉬운 말로 이를 표현하였는데, 이는 실로 거듭난 자로서만 가능한 일이다. 

 

(빌립보서 2:1-4)
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2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4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이러한 사람의 마음의 본성을 너무나 잘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직접 이를 상세하게 가르쳐 주셨다.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잠언의 말씀을 풀어서 설명해 주시면서 이러한 사람의 본성을 안타깝게 여기신 것처럼 느껴진다.

 

(누가복음 14:7-11)
7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높은 자리 택함을 보시고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8 네가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9 너와 그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라 하리니 그 때에 네가 부끄러워 끝자리로 가게 되리라

10 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끝자리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 앉으라 하리니 그 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이 있으리라

11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자신을 낮추면 높여줄텐데, 왜 그리 애써 자신을 높이려 애를 쓰는 것인지... 자신을 높이려는 것이 죄의 시작인데 말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그리고, 자기를 낮춤으로써 큰 영광을 얻게되고, 마침내는 존귀해 진다는 것을 성경은 직접 보여주고 있다.

 

<세례요한>

 

세례요한은 자신의 사명을 알고, 철저하게 자신을 낮추며 사명을 감당했다.

 

(누가복음 3:15-16)

15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생각하니

16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그래서, 세례요한은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 곧 '이 세상 사람 가운데 가장 위대한 인물'이 되었다.

 

(누가복음 7:28)

28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도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하시니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겸손함으로써 하나님께 철저히 순종하셨고, 구원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 가장 낮은 삶과 가장 낮은 죽음을 감당하셨다.

 

(빌립보서 2:5-8)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그리고,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존귀한 이름으로 세우셨다.

 

(빌립보서 2:9-11)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지금의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나를 알리지 않으면 바보가 되는 것처럼 사람들은 말을 하지만, 그것은 세상에 속한 사람들의 생각이고 세상이 알려주는 가치관일 뿐이다. 이 세상은 거짓의 아비인 사단이 왕노릇하고 있는 곳이다.

우주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신 바는 이와 반대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참된 길이고, 승리의 길이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낮추라고 하셨다. 높아지고 싶으면 자신을 낮춰야 한다는 것, 이것을 아는 사람이 진짜 똑똑한 사람이다.

그리고, 진짜 똑똑한 사람은 반드시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며 나를 낮추며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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