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속에 잠깐 스쳐가는 말씀 한 조각

말씀 한 조각 만으로도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 생각 한 조각

죽은 자의 살아남에 관한 생각

아리마대 사람 2018. 1. 18. 17:18

1. 엘리야를 돌본 사르밧 과부의 아들이 살아남

 

열왕기상에 보면 가뭄 기간 동안 엘리야를 돌보던 사르밧 과부의 아들이 병들어 죽은 이야기가 나온다.

아들이 죽자 사르밧 과부는 한탄하며 엘리야를 원망하였으나, 엘리야는 죽은 아들을 살려낸다.

 

(열왕기상 17:20-24)
20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또 내가 우거하는 집 과부에게 재앙을 내리사 그 아들이 죽게 하셨나이까 하고
21 그 아이 위에 몸을 세 번 펴서 엎드리고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 아이의 혼으로 그의 몸에 돌아오게 하옵소서 하니
22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난지라
23 엘리야가 그 아이를 안고 다락에서 방으로 내려가서 그의 어머니에게 주며 이르되 보라 네 아들이 살아났느니라
24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 하니라

 

과부의 아들을 살려내기 위해 엘리야가 한 행동은 '몸을 "세 번 펴서" 엎드리고 여호와께 부르짖'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셨을 때, 아이는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났다. 아들이 살아나자 과부는 엘리야에게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라고 말하였다.

 

2. 에스겔이 환상 중에 마른 뼈들이 살아남을 봄

 

하나님께서는 환상 중에 에스겔을 말라버린 뼈들이 가득한 골짜기로 인도하여, 뼈들이 서로 맞아들고 힘줄과 살이 생기고 가죽이 덮이는 광경을 보게 하셨다.

 

(에스겔 37:1-28)
1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재하시고 그의 영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2 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가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3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4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5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6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또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하셨다 하라
7 이에 내가 명령을 따라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며 이 뼈, 저 뼈가 들어 맞아 뼈들이 서로 연결되더라
8 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
9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 하라
10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11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 하느니라
12 그러므로 너는 대언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
13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한즉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14 내가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고 내가 또 너희를 너희 고국 땅에 두리니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뼈로부터 사람의 모습이 된 후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죽음을 당한 자들에게 생기가 들어가 살아났는데, 그 모습은 극히 큰 군대였다. 하나님께서는 그 뼈들이 이스라엘 족속이며, 자신들의 뼈들이 말랐고 소망이 없어져 다 "멸절"되었다고 말하는 그들을 "무덤"으로부터 되살려 그들의 "고국"인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3. 마리아와 마르다의 오라비 나사로를 살리심

 

예수님께서는 마르다, 마리아, 나사로, 이 삼남매를 사랑하셨다. 그런데,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셨다. 예수님께서는 이 병이 죽을 병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을 위한 병이라고 말씀하시고, 병으로 죽은 그를 무덤으로부터 살아 나오게 하셨다.

 

(요한복음 11:3-44)

3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4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5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6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7 그 후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유대로 다시 가자 하시니
8 제자들이 말하되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
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낮이 열두 시간이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10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
11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이르시되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12 제자들이 이르되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하더라
13 예수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그들은 잠들어 쉬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생각하는지라
14 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15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시니
16 디두모라고도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
17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18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깝기가 한 오 리쯤 되매
19 많은 유대인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그 오라비의 일로 위문하러 왔더니
20 마르다는 예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이하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
21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22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24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27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28 이 말을 하고 돌아가서 가만히 그 자매 마리아를 불러 말하되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 하니
29 마리아가 이 말을 듣고 급히 일어나 예수께 나아가매
30 예수는 아직 마을로 들어오지 아니하시고 마르다가 맞이했던 곳에 그대로 계시더라
31 마리아와 함께 집에 있어 위로하던 유대인들은 그가 급히 일어나 나가는 것을 보고 곡하러 무덤에 가는 줄로 생각하고 따라가더니
32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33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34 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36 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하며
37 그 중 어떤 이는 말하되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하더라
38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비통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41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42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43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44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는 나사로에게 곧바로 가지 않으시고, "이틀"을 더 계시다가 가셨다. 처음 전해진 소식은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것이었으나, 이틀 후, 나사로에게 가실 때에는 이미 나사로가 죽었다는 것을 아시고 제자들에게 이를 명확히 말씀하셨으며, 이 죽음은 제자들을 비롯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믿게 하려 함이라는 것을 말씀하셨다. 그리고,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고 말씀하시고, 이 일이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라는 것을 선포하셨다.

 

4.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심

 

회당장 중 하나인 야이로가 예수님께 찾아와 자신의 딸이 병들어 죽게 되었으니 살려달라고 간청하여 그의 집으로 가시던 중, 회당장의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셨지만 예수님께서는 그의 집으로 가셔서 소녀를 살리셨다.

 

(마가복음 5:22-43)
22 회당장 중의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 아래 엎드리어
23 간곡히 구하여 이르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하거늘
24 이에 그와 함께 가실새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밀더라
25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26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27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28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29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30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31 제자들이 여짜오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하되
32 예수께서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 보시니
33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쭈니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35 아직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이르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36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37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 외에 아무도 따라옴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38 회당장의 집에 함께 가사 떠드는 것과 사람들이 울며 심히 통곡함을 보시고
39 들어가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40 그들이 비웃더라 예수께서 그들을 다 내보내신 후에 아이의 부모와 또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을 데리시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사
41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
42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가 열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43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그들을 많이 경계하시고 이에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라


죽게 된 12살 소녀를 고쳐주러 가시는 중에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고 병이 낫는 일이 있었다. 이 여인은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는 믿음을 가진 여인이었고,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라고 말씀하셨다. 마침, 이 때에 회당장의 집으로부터 소녀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으나, 예수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말씀하시고, 그의 집으로 가셔서 죽은 소녀를 잔다고 말씀하신 데에 대해 비웃는 사람들을 다 내보내신 후에 소녀를 살리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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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죽은 사람을 살린 말씀들을 보노라면 작은 생각 하나가 스쳐간다.

죽은 사람을 살리신 일들이 죽은 나라가 살아난 것과 무척 흡사하다는 것이다. 죽은 사람,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슬퍼하고 통곡하며 장사지내야 할 사람이 다시 살아난 것과 죽었던 나라, 그래서 없어지고 잊혀졌던 나라인 이스라엘이 다시 세워진 것이 무척이나 닮아있다.

죽은 사람에게는 더 이상 생명이 없다. 그래서, 더 이상 살아있음을 볼 수 없기에 주변 사람들은 통곡했다. 가족들은 죽기 전에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예수님을 모셨지만, 예수님이 도착하셨을 때는 이미 죽어있는 상태였다. 사람들은 저 사람이 병도 고치면서 진작에 죽지 않게 살리지 그랬나, 이미 죽었으니 와봐야 소용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믿음을 가지라고 말씀하시며, 그 죽음은 죽음이 아니고 잠이라고 하신다. 그리고, 죽은 사람을 살리신다.

죽은 나라가 되살아난 일은 어땠는가. 성경에서는 이스라엘 족속을 가리켜 하나님께서 택하신 민족이라고 했지만, 그들의 나라는 없어졌고 더 이상 그 나라를 본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성경말씀이 '영적으로' 해석되어야 하며 따라서 그 백성 이스라엘 족속과 그들의 나라 이스라엘은 이제 '영적으로' 다른 백성들로 '대체'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성경은 이스라엘을 언급하는 데에 주저함이 없었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을 가지라고 선포하셨으며, 하나님께서는 마른 뼈와 같은 이스라엘 족속이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와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세우게 하셨고, 이로써 성경의 말씀은 틀림이 없음이 증거되었다.

 

에스겔이 환상 중에 본 마른 뼈들을 생각하며...

투명인간의 이야기를 다룬 '할로우맨'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약품에 의해 피부와 힘줄과 혈관과 뼈가 점차 나타나는 영화의 장면을 참고하면 에스겔이 본 환상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생명의 흔적이 전혀 없는, 돌멩이와 다름없는 마른 뼈들. 그러나, 그 위에 사람이 되는 데에 필요한 모든 것들이 생겨났고, 마침내는 생기가 들어가 큰 군대가 되었다.

전 세계로 흩어진 채로 조상의 유지를 따라 전통을 유지하고 살았지만 조직 공동체로서의 기능은 멸절되어 있던 이스라엘 족속들. 그러나, 그들 가운데에 나라를 구성하는 데에 필요한 모든 것들이 생겨났고, 마침내는 국가를 수립하여 역사 가운데 회복되고 전 세계에 영향력을 끼치는 나라가 되었다.

에스겔서의 말씀과 같이 이스라엘 온 족속이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고 말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무덤으로부터 나오게 하셨고 그들의 고국인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셨다. 이 일은 고대의 이스라엘이 포로로 잡혀갔다가 돌아온 일만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현대의 이스라엘이 건국된 일을 더 잘 드러내고 있다. 역사 가운데에서 언약을 세우시고, 말씀하시고, 이루시는 분은 역사와 정치를 주관하시는 분이실 수 밖에 없다. 그 분은 하나님이시다.

 

나사로를 살리신 일을 생각하며...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나사로를 사랑하셨음에도 즉시 가지 않으시고 이틀을 더 머무르신 후에 나사로에게로 향하셨다. 이 때, 제자들은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라고 말씀드렸지만, 예수님께서는 나사로에게 가시기 위해 유대땅으로 가셨고, 그를 살리셨다.

예수님께서는 굳이 왜 이틀을 더 머무르셨을까. 혹자는 참 잘도 갖다가 꿰맞춘다고 할런지 모르지만, 이틀의 의미를 다음의 말씀에서 참고해 볼 수 있다.

 

(베드로후서 3:8)

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이 말씀을 참고하여 하루를 천년으로 이해하면, 이틀은 이천년이 된다. 이스라엘의 건국이 1948년 5월 14일이니 서기 70년 예루살레의 멸망 후 대략 이천년, 좀 더 정확하게는 일천 구백년(일천 팔백 칠십 팔년이다)에 가까운 시점에 나라가 회복된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정확히 만 이틀, 48시간을 머무르신 것이 아니라, 그에 준하는, 만 이틀보다 좀 더 짧은 시간을 머무르셨다고 생각해 본다면, 이 이틀과 일천 구백여년의 연결이 좀 더 타당성을 갖게 될지 모르겠다.

예수님께서 '유대로 다시 가자'고 하셨을 때, 제자들은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라고 대답했다.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다'는 말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유대인들이 십자가에서 죽게 하였다'는 말과 통하며, 이는 곧 유대인들은 저주받은 민족이라는 '반유대주의'와 연결된다.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라는 말은 '가지 마시라'는 뜻, 또는 '가실 필요가 없다'는 뜻을 가진 말이 되며, 이는 '저주받은 유대인들을 대신할 영적인 이스라엘이 세워졌으니 이제 더 이상 이스라엘은 필요가 없다'는 뜻과 되어 '대체신학'의 관점과 연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나사로에게 향하신다. 잠든 나사로를 깨우는 정도가 아니라, 죽은 나사로를 살리러 가시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스스로 유대인임을 자각하고 팔레스타인 땅에 모여서 촌락을 이루며 눈치보고 살아가는 정도가 아니라, 실제적인 국가를 수립하는 역사가 일어난 것이다.

나사로가 사는 마을인 베다니에 도착하셨을 때는 이미 무덤에 장사된지 나흘이 된 때였다. 예수님께서는 마을에 들어가지 않으신 채 마르다와 마리아를 만나셨고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죽은 나사로를 어디 두었는지 물으시고는 눈물을 흘리셨다.

마리아와 마르다가 우는 것과 그들을 위로하는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셨다고 성경은 말씀하지만 그들에 대해 느끼신 비통함과 불쌍함이 과연 눈물까지 흘리실 정도였을까. 더구나, 나사로의 죽음을 잠으로 말씀하시며 내가 깨울 것이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이셨고, 또한 이제 곧 나사로가 살아날 것까지 아시는데 눈물까지 흘리실 필요가 있었을까. 나사로가 살아나기 전, 예수님께서 슬픔을 느끼시고 눈물까지 흘리실 일은 무엇이었을까. 이것은 이스라엘이 수립되기 전 나치에 의해 저질러진 홀로코스트를 떠올리게 한다. 이제 곧 나사로와 같이 이스라엘이 살아날 것임에도 불구하고 눈물을 흘리실 만한 일이 일어났음을 생각할 수 있다.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의 운명을 두고 우셨음을 생각할 때, 예수님의 눈물은 더 먼 시간을 바라보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흘리신 것이 아니었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누가복음 19:41-44)
41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42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43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44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그리고, 무덤에 가신 예수님은 죽은 지 나흘이 되어 냄새가 난다는 말에 개의치 않으시고 무덤을 막은 돌을 치우라 하시고 기도하신 후, "나사로야 나오라"는 말로 장사지낸 바 된 모습의 나사로를 무덤에서 걸어 나오게 하셨다. 주변에서 죽은 지 나흘이 지나 시신이 부패하였으니 무덤을 열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고 상식에 근거한 말씀을 드렸어도 무덤의 문을 열고 나오라고 부르시는 지극히 단순한 일을 행하심으로 나사로를 살리신 장면은 마치 정치적, 역사적, 지리적 상식에 근거하여 모두가 안된다고 고개를 저을 때 국가수립이 결의, 통과되고 국가수립을 선포할 수 있었던 이스라엘의 건국과정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이와 같이 나사로를 살리신 일을 생각하면, 이스라엘의 건국의 역사가 떠오른다...

 

사르밧 과부의 아들이 살아난 일을 생각하며...

아들과 함께 마지막 음식을 만들어 먹고 죽으려던 사르밧 과부는 엘리야가 '먼저 내가 먹을 작은 떡 한 개를 만들라'는 말에 순종하여 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는 기적을 경험하며 살게 되었다. 그런데, 그 때 그의 아들이 병들어 죽는 일이 벌어졌다. 여인은 엘리야에게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나와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기로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또 내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나이까"라고 말한다. 당장 굶어 죽게 된 상황에서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는 기적이 일어났으나, 아들이 죽는 일이 벌어졌고, 아들의 죽음은 여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죄를 떠올리게 했으며, 자신의 죄때문에 아들이 죽었다는 자책감을 갖게 한 것이다.

기적 가운데에서도 존재했던 비극. 이는 이스라엘이 건국되었음에도 1947년 UN에 의해 분할된 바와 같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지역의 극히 일부의 땅만을 차지할 수 있었을 뿐이었음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의 예루살렘은 이스라엘과 먼 땅이었고,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루살렘을 보며 심히 비통한 마음과 자책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엘리야는 여인의 죽은 아들을 받아 안고 자신이 거처하는 다락에 올라가서 자기 침상에 누이고 하나님께 부르짖은 후, 아이 위에 몸을 세 번 펴서 엎드리고 여호와께 "이 아이의 혼으로 그의 몸에 돌아오게 하옵소서"라고 부르짖는다.

어른인 엘리야가 아이 위에 몸을 펴서 엎드린다면, 아이에게는 큰 압력이 가해졌을 것이다. 그리고, 눈길을 끄는 대목은 엘리야가 몸을 펴서 엎드리는 행동을 "세 번"했다는 점이다. 기적을 불러오는 행동이라면 한 번으로 충분할 듯도 싶은데... 설령 확실히 하기 위해 반복한다 하더라도 두 번이면 충분할 것 같은데... 엘리야는 세 번을 반복한다. 그리고, 부르짖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의 소리를 들으시고 아이의 혼이 돌아와 살아나게 되었다.

이 세 번의 행동, 아이를 짓누르는 세 번의 행동은 세 차례의 중동전쟁을 떠올리게 한다. 전쟁이라는 절박한 스트레스의 상황, 그러나 그 가운데 하나님의 손길이 역사하셨고 세 차례의 전쟁을 치른 후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을 회복할 수 있었다. 

 

엘리야가 살아난 아이를 그 어머니에게 주며 "보라 네 아들이 살아났느니라"라고 말하자, 그 여인은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라고 말하였다. 마찬가지로 예루살렘의 회복을 통해 많은 유대인들도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라고 고백했을 것이다. 유대인 뿐만 아니라, 아마도 성경을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라고 고백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예루살렘은 아직 완전하게 이스라엘의 땅이라고는 할 수가 없다. 기본적으로 UN이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한 정치역학적 문제는 아니며, 그 뒤에는 영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다.

예루살렘이 완전하게 이스라엘의 땅이 되는 날, 이스라엘은 아들이 살아남을 본 사르밧 과부와 같이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라는 고백을 넘어서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라는 완전한 고백을 하게 될 것이다.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라는 고백은 다음의 말씀을 이루는 고백이 될 것이다.

 

(누가복음 13:35)

35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송하리로다 할 때까지는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님, 당신은 주님이시요"라는 고백, 곧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송하리로다"라고 고백할 때, 말씀대로 우리는 예수님을 보게 될 것이다. 이것이 예루살렘의 회복이 내포하고 있는 영적인 측면의 의미이다.

최근의 이슈를 근거로 살펴볼 때, 이제 예루살렘의 회복은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놀라운 고백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사르밧 과부의 아들을 살리신 일은 예루살렘 회복의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일을 생각하며...

야이로는 회당장 중의 한 명이었다. 야이로가 회당장이었음에 주목하면 또한 회당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회당은 예배를 드리고 율법을 가르치는데 사용된 건물로서,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로 잡혀가는 등의 이유로 인해 유대땅과 성전으로부터 멀어진 채로 살게 되었을 때, 또한 훗날 로마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후에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되었을 때, 유대인들의 구심점의 역할을 감당했다. 유대인들이 모이는 장소였음을 생각한다면, 회당은 이스라엘 백성의 집단, 또는 이스라엘의 영토, 또는 현대에 수립된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와 통하는 개념으로 이해된다. 

회당장 야이로의 어린 딸은 12살이었는데, 죽어가고 있었으며, 곧 죽게 된 상황이었다. 성경은 죽게된 상황을 말씀하고 있지 않지만, 치명적인 사고가 아니라면 아마도 병으로 인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는 회당장에게 닥친 실로 크나큰 어려움이었다.

이 어려운 상황을 맞이한 회당장의 집으로 가는 도중, 길에서 작은 사건이 일어난다.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가를 만진 일, 그리고 병이 나은 일이다.

사전을 참고하니 혈루증은 피가 엉키고 뭉쳐서 등이 굽는 병이라고 하는데, 아마 만성 자궁출혈로 짐작된다고 한다. 여인은 이 병을 고치기 위해 가진 재산을 다 썼지만, 어느 의사도 그 병을 고치지 못하였고 오히려 증세는 더욱 위중해졌다. 이제 희망을 잃고 지쳤을 법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이 여인은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손을 대시면, 아니 자신이 예수님께 손을 대면, 아니 자신이 예수님의 옷자락에만 손을 대어도 자신의 병이 나을 것을 믿었고, 이를 실행하였다. 예수님의 주변을 에워싼 무리들 중 예수님과 가까운 자리는 주로 힘이 센 남자들이 차지했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그렇다면 여인으로서는 그 자리까지 이동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나 간절한 믿음을 간직한 여인은 어떻게든 예수님 가까운 자리로 이동하였고, 예수님의 뒤편에서 옷가에 손을 대었다. 조용히 병만 낫기를 바랬던지, 혹은 여인이 나서지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라도 있었는지, 또는 예수님 앞에 서기에는 떳떳하지 못했는지... 여인은 뒤편에서 예수님의 옷가에 손을 대었고, 그 즉시 병이 나았음을 깨달았다. 

또한 그 즉시 예수님께서는 누군가가 자신에게 손을 대었음을 아셨고, 결국 여인은 예수님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말씀드린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회당장의 집으로 가던 중에 끼어들어 발생한 혈루증 여인의 사건을 보면, 그 느낌이 무척 '뜬금없다'. 뜬금없는 사건이 발생했고, 뜬금없이 기록되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본래 회당장 딸에 관한 것인데, 갑자기 혈루증 여인에 관한 이야기가 완전한 모습으로 삽입되어 있다. 여기서 완전한 모습이라는 것은 병든 여인이 나음을 받는 이야기의 전체가 기록되어 있다는 뜻이다. 액자소설과도 같은 이러한 이야기의 구성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시간표, 곧 이스라엘 민족에 대하여 정하신 기한과 이방인의 때를 떠올리게 한다.

 

(다니엘 9:24)
24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일흔 이레를 기한으로 정하였나니 허물이 그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용서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환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

 

(누가복음 21:24)
24 그들이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

 

회당장의 딸은 이스라엘 백성을, 혈루증 여인은 이방인을 떠올리게 한다. 회당장의 딸에 관한 이야기는 이스라엘 백성과 예루살렘 성을 위하여 정해진 일흔 이레의 기한을, 혈루증 여인의 이야기는 이방인의 때를 떠올리게 한다. 회당장의 집으로 가는 길, 혈루증 여인의 사건, 그리고 회당장의 딸을 살리신 이야기는 마치 "일곱 이레와 예순두 이레", "이방인의 때", 그리고 "한 이레"를 떠올리게 한다.

이 의사, 저 의사를 찾아다녔지만 병은 오히려 깊어지고 재산만 잃어버린 여인의 상황은, 우상에게 절하며 복을 빌었지만 죽음과 절망만 깊어지고 더 피폐해지는 삶을 살았던 이방인의 삶과 닿아있다.

옷자락만 만지고도 구원을 받은 여인의 상황은,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를 믿기만 하면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구원을 얻는다는 믿음만으로 구원을 받게 된 이방인의 구원과 닿아있다.

예수님께서 여인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라고 말씀하셨으니, 이는 비록 육신으로는 유대인이 아니지만 영적으로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후손, 영적인 이스라엘로서 세움받았다는 자신감까지 갖게 된 이방인의 믿음과 닿아있다.

이때, 회당장의 집으로부터 온 사람들이 회당장의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한다. 그리고, 회당장에게 이제 예수님을 괴롭게 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이 충고는 곧 딸이 죽었으니 상황은 종료되었고, 예수님은 이제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회당장은 이 순간 충격과 절망, 포기의 경계에 서게 된 것이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회당장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는 회당장에게 딸이 '살아나리라' 정도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은 극도로 긴박한 상황, 아니 죽음이 확실한 상황, 아니 죽었다고 소식이 전해지는 상황, 그래서 주변에서 울며 통곡하는 상황에 처하더라도 이스라엘 국민들이 두려워하지 않고 믿기만 하면 살아날 것이다. 살아날 뿐만 아니라, 구원을 얻을 것이다. 그 구원을 통해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송하리로다 "라고 고백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상황을 '잔다'고 말씀하셨다.

이 모든 상황을 본 것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그리고 아이의 부모인 회당장 부부 뿐이었다. 하나님의 역사는 믿음 가운데 굳게 선 자들에게만 보여지게 될 것이다.

특별히, 이 사건에서는 혈루증을 여인이 "열두 해"를 앓아왔다고 기술하고 있으며, 회당장의 딸의 나이가 열두 살이라는 점을 기술하고 있다. 공통적으로 나타난 12라는 숫자를 볼 수 있다. 12라는 숫자는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나라와 관려된 숫자이다.

이스마엘의 12 두령, 이스라엘의 12 지파, 그리고 이와 관련된 것들은 모두 12 개씩, 성소의 떡 12 덩이, 이스라엘의 12 지방 관장, 성전의 12 마리 놋소, 번제하는 바닥의 길이와 너비 12 척, 낮이 12 시간, 오천명이 먹고 남은 떡조각과 물고기가 12 바구니, 예수님께서 부모와 성전에 올라가셨던 12 살 때, 예수님의 12 제자, 그리고 그들이 앉는 12 보좌, 새 예루살렘 성의 12 문과 12 천사, 12 기초석, 생명나무의 12가지 열매 등에서 볼 수 있는 숫자 '12'는 하나님의 주권을 나타내고 있다. 그렇다면, 혈루증 여인의 12년과 회당장의 딸의 12살에도 하나님의 주권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병에 걸려 고생한 시간, 단순히 아이의 나이를 나타내는 시간보다 더 큰, 하나님의 섭리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일은 이스라엘의 영적 회복의 역사를 기대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역사가 운행되어 가는 것을 보면 누가 이를 행하시는지 알 수 있다고.

 

(이사야 41:4, 18-20)

4 이 일을 누가 행하였느냐 누가 이루었느냐 누가 처음부터 만대를 불러내었느냐 나 여호와라 처음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

 

18 내가 헐벗은 산에 강을 내며 골짜기 가운데에 샘이 나게 하며 광야가 못이 되게 하며 마른 땅이 샘 근원이 되게 할 것이며

19 내가 광야에는 백향목과 싯딤 나무와 화석류와 들감람나무를 심고 사막에는 잣나무와 소나무와 황양목을 함께 두리니

20 무리가 보고 여호와의 손이 지으신 바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가 이것을 창조하신 바인 줄 알며 함께 헤아리며 깨달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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