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속에 잠깐 스쳐가는 말씀 한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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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 한 조각

이단 3. 이단과 사이비에 속지 않고, 속아서도 안되며, 속을 수도 없다.

아리마대 사람 2023. 1. 20. 02:37

이단(端)의 뜻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1. 자기가 믿는 이외의 도(道)
2. 전통이나 권위에 반항하는 주장이나 이론
3. 전통이나 권위, 세속적인 상식에 반항하여 자기 개성을 강하게 주장하여 고립되어 있는 사람
1번은 이단에 대해 매우 관대한 의미이다. 종교다원주의의 관점에서는 1번의 의미는 진리에 도달하는 또 다른 길이나 방편 정도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2번은 요즘의 이해되는 진보주의의 의미에 가까울 것 같다.
3번은 사람을 가리키는 의미인데, 아마도 이단아라는 말의 의미와 동일한 것 같고, 반항아의 이미지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이 의미는 개성적인 사람이나 깨어있는 사람내지는 소위 힙한 사람으로 받아들여 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사전이 알려주는 뜻을 참고하면 오히려 어지럽다. 그래서 글자 그대로의 의미, 곧 (시작은 같을지라도) 끝이 다른 사상이나 그러한 사상을 따르는 자들의 무리로 해석하는 것이 좀 더 이해하기 쉬울 것 같다.
사이비(似而非)의 뜻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 겉으로는 비슷하나 속은 완전히 다름. 또는 그런 것.
이 말의 의미는 글자 그대로이다. 유'사'하게 보이지만 '그러나' 실은 '아닌' 것이다.
그러니까 이단과 사이비는 교묘한 가짜와 엉터리를 가리키는 말인 것이다.
이단과 사이비가 아무리 진짜같아 보여도...
이단과 사이비가 아무리 그럴 듯해 보여도...
이단과 사이비가 아무리 좋아 보여도...
가짜이고 엉터리일 뿐이다.

공부를 하는 데에 있어서, 혹은 어떤 것을 이해하고 배우는 데에 있어서 흔히 언급되는 말이 있다. '개념'이 확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 곧 정의(definition)를 명확히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단과 사이비에 속지 않기 위해서, 안전하게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도 '개념'이 확실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단과 사이비의 유래와 내력에 대한 '개념'도 확실히 알아야 한다. 또한, 이단과 사이비에 대처하여 올바른 믿음을 간직하고 사는 데에 있어서도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개념'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

신비주의


아라비안나이트가 왜 재미있을까? 무협지가 왜 재미있을까? 환타지 소설들이 왜 재미있을까?
일상의 공간과 동떨어진 신비한 장소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이다.
마술이 왜 신기할까?
일상의 경험과 동떨어진 신비한 현상이 눈앞에 보여지기 때문이다.
신비한 것은 쉽게 사람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고 쉽게 사람들을 모으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어릴 적 시장 한 켠에서 정체모를 약을 팔던 떠돌이 약장수들은 '신비'한 마술을 보여줬고, '신비'롭게도 원숭이나 뱀을 데리고 다녔다. 그리고 모든 병에 특효라는 '신비'한 만병통치약을 팔았다.
이단들이 그러하다. '신비'한 것을 내세우고 주장한다. '신비'한 계시나 예언을 내세우고, '신비'한 해석을 주장하며, '신비'한 물건이나 행위를 강요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가 기록된 성경에서도 계시나 예언 등의 신비한 일이 흔한 일은 아니었다. 이미 오래 전에 귀한 일이 되어 버렸다.

(사무엘상 3:1)
1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이미 사무엘 선지자가 어릴 적에도 계시나 예언은 흔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니 지금의 시대에 꿈을 통해서, 입신을 해서, 환상을 통해서 소위 직통계시, 즉 하나님께 직접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나 행태는 일단 의심이 필요하다. 성령을 내세우며 영적인 신비를 주장하는 사람이나 행태도 일단 의심이 필요하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인 이 세상과 사람들에 관한 설명서로서 이미 우리에게 성경을 주셨다. 지금은 기록된 성경이 다양한 매체를 통해 보급되었고 쉽게 접근이 가능한 시대이다. 따라서, 계시나 예언이 아니라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다. 이미 주신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읽을 때 성령께서 지혜를 주시고 깨닫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신다.

(요한1서 2:26-27)
26 너희를 미혹하는 자들에 관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
27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이 개념을 이해한다면, "내가 꿈을 꿨는데...", "내가 입신을 해서 하늘나라에 다녀왔는데...", "내가 환상을 봤는데..."하는 둥의 '신비'롭게 여겨지는 자기최면이나 거짓말에 시간을 빼앗기거나 속지 않는다. 속아서도 안되며, 속을 수도 없다.

성경풀이


본질적으로 성경은 영적인 책이다. 영이신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땅의 먼지에서 유래된 우리가 감히 우리의 머리에 담을 수 없는 분이시며, 그분의 말씀 또한 우리의 머리로 파악할 수가 없다. 또한 성경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피조물인 이 세상과 사람들에 관한 설명서로서 우리에게 주신 책이다. 따라서 이 책 가운데에는 세상의 일들을 알려주고 설명해주는 많은 이야기와 진리가 담겨 있다.

(이사야 55:8-9)
8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성경의 이와 같은 특성을 이용하여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이를 통해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무리가 나타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성경은 이와 같은 행위를 주의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베드로후서 1:20-21)
20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안내를 해도 말을 듣지 않는 무리들이 있을 것이므로 성경은 이와 같은 행위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베드로후서 3:16-17)
16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17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가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또한 성경을 조작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경고하고 있다. 특히 계시의 말씀인 요한계시록과 관련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요한계시록 22:18-19)
18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19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고 읽는 책이고, 성경께서 깨닫게 하시는 바에 따라 깨닫는 책이고, 깨달은 바에 따라 행하는 책이다.

(요한계시록 1:3)
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인간이 다 풀어서 이해할 수 있는 책이 아니다.
이 개념을 이해한다면, 성경의 진리가 다 풀렸다는 둥의 강아지 풀 뜯어 먹는 소리에 현혹되지 않는다. 현혹되어서도 안되며, 현혹될 수도 없다.

재림주


뉴스에 항상 등장하는 기사 중에는 사기꾼에 관한 사건들이 있다. 전현직 대통령과의 밀접한 관계를 내세우거나, 전문직 종사자임을 내세워 남을 속인 사기꾼들의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미 식상해졌고, 그런 사기에 속아서 피해를 봤다는 피해자가 신기하게도 끊이지 않는다는 사실도 어쩌면 조만간 식상해질 것 같다.
자칭 재림주라는 사기꾼에 관한 뉴스도 그러하다. 우리나라에만 자칭 하나님이라는 자들이 20명이 넘고, 자칭 재림 예수라는 자들이 50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런 자들이 활동한다는 사실은 이미 식상해졌고, 그런 자들에게 속아서 피해를 봤다는 피해자가 신기하게도 끊이지 않는다는 사실도 어쩌면 조만간 식상해질 것 같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일이 있을 것을 미리 말씀해 주셨다.

(마태복음 24:4-5)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5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사기꾼들의 미혹이 꽤나 그럴 듯 해서 심지어는 바르게 신앙생활을 하던 사람들조차 현혹될 위험이 있다는 것도 미리 말씀해 주셨다.

(마태복음 24:23-24)
23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그러나 그 어떤 경우에도 사기꾼들에게 속아서 따라 나서는 어림석음을 가져서는 안된다고 강조해서 말씀해 주셨다.

(마태복음 24:4-5)
25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26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순전히 말빨로든, 혹은 속임수를 이용해서든, 혹은 귀신의 힘을 빌어서든, 혹은 기술의 도움을 받아서든, 어떤 형태로든 사기에 속아 넘어가서는 안된다. 그것이 지금 눈 앞에서 펼쳐지는 기적이더라도 말이다.
이 개념을 이해한다면, 자칭 하나님, 혹은 자칭 재림주, 혹은 성경에서 언급된 각종 명칭을 갖다붙인 잡다한 사기꾼들을 믿고 따라나서는 어리석음을 행하지 않는다. 행해서도 안되며, 행할 수도 없다.

종말론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라고 한다. 천리만큼 떨어진 목적지는 비록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한걸음 한걸음 걷다 보면 결국 언젠가는 천리만큼 떨어진 목적지에 도달하게 된다. 천리길에 비해 한걸음의 보폭은 너무나 작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 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천리만큼 떨어진 목적지가 한걸음만큼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천리길을 앞에 두고, 아니 만리길을 앞에 두었다 할지라도 내가 해야 할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한걸음을 내딛는 것 뿐이다.
종말의 때도 그러하다.

(마가복음 13:32-33)
32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33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라

누구도 그 때가 언제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 예정하셨으며, 하나님께서만 알고 계시는 종말의 때는 분명히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살아가고 있고, 시계바늘이 움직이거나 디지털 시계의 숫자가 변하면서 시간은 흐르고 있으며, 결국 언젠가는 종말의 때에 도달하게 된다. 분명한 사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종말의 때는 일초씩, 일분씩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때가 언제인지는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시지만, 종말을 앞에 두고 내가 해야 할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나를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대로 지금 이 순간, 매초, 매분의 시간을 살아가는 것 뿐이다.
혹시 종말이 내 눈 앞에 있더라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성경은 종말이 언제인지와 상관없이, 혹시 내 눈 앞에 종말이 닥쳐온 그 순간이라 할지라도 지금 나의 이 순간과 종말의 그 순간까지를 포함하는 모든 시간, 즉 "항상", "쉬지말고", "범사에"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라고 가르쳐주고 있다.

(데살로니가전서 5:16-18)
16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이 개념을 이해한다면, 종말이 곧 온다거나 몇년 몇월 몇일 몇시 몇분에 예정되어 있다는 둥의 말에 현혹되지 않는다. 현혹되어서도 안되며, 현혹될 수도 없다.

◆ ◆ ◆


공부를 하거나 어떤 것을 이해하고 배우는 데에 있어서 '개념'이 확실해야 하듯이 이단과 사이비에 속지 않기 위해서는, 천국을 향해 가는 길에서 실족하지 않고 안전하게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개념'이 확실해야 한다. 그리고 개념과 관련해서는 '용어'가 매우 중요한데, 대개 용어는 개념을 바탕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로는 잘못된 용어가 개념을 혼란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단과 관련해서는 무척 잘못된 용어가 있다. 그것은 '기독교 계열 이단'이라는 용어이다. 이 용어는 기독교인들에게는 이단에 대한 경계를 떨어뜨리고 이단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하는 용어이며, 비기독교인들에게는 기독교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갖게 하는 용어이며, 반기독교인들에게는 기독교를 비난하는 좋은 소재가 되는 용어이다.
이단은 이단일 뿐, '기독교 계열 이단'이란 존재할 수가 없다. 이단의 교주가 기독교 출신이거나, 이단의 교리가 하나님 또는 예수님과의 연관성을 주장하거나, 이단의 교리가 기독교 교리의 형식을 차용하거나 성경을 인용한다는 이유로 이런 용어가 사용되고 있는데, 이미 기독교를 벗어난 자들의 집단이며 기독교에 피해를 주는 자들의 집단이므로 '기독교 계열'이라는 말은 애초에 성립할 수가 없는 것이다.
도둑이 남의 집에서 무언가를 훔쳐갔을 때, 그 도둑을 그 집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 '그 집 계열'이라고 분류할 수 있을까?
정신병원의 환자가 자신을 예수라고 주장할 때, 그 환자를 예수와 밀접한 관련을 가진 '기독교 계열'로 분류할 수 있을까?
도둑은 도둑일 뿐이고, 환자는 환자일 뿐이며, 이단은 이단일 뿐이다.
'기독교 계열 이단'이란 용어는 링에서 진행되는 격투경기에서 일방적으로 상대선수를 공격하기 위해 상대선수를 코너에 몰아넣는 경기운영과 같은 것이다. 일방적으로 기독교를 공격하기 위해 '기독교 계열'이란 용어를 이용하여 기독교를 코너에 몰아넣고자 하는 용어인 것이다.
이와 같은 잘못된 용어를 보더라도 이단으로 인해 기독교가 외부적으로는 흠집이 생기고 비난을 받게되며, 내부적으로는 교회공동체에 흠집이 생기고 붕괴될 위험이 처할 수도 있게 된다. 이러한 영향을 받게 되면, 회복하기가 무척 어렵게 된다. 그래서 일상과 마찬가지로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안전이 제일이다. 운전 중인 내차를 앞질러 질주하는 차량이 저 멀리 사라진 후, 도로변에서 요가자세로 발견되는 블랙박스 영상들이 흔하지 않은가. 교회에 실망해서 의지할 곳을 찾는다거나, 귀에 솔깃한 새로운 성경풀이를 찾다가 훗날 음부에서 요가자세로 발견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말아야 할 것이다.
바르고 안전한 신앙생활에 필요한 '개념'은... 이미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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