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속에 잠깐 스쳐가는 말씀 한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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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 한 조각

K-기독교(개신교)...

아리마대 사람 2023. 1. 29. 20:57

요즘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더 글로리"라는 드라마가 화제이다. 학교폭력을 소재로 한 드라마로서 학창시절 학교폭력에 시달린 주인공이 차근차근 복수를 준비하여 마침내 성인이 된 후 복수를 실행한다는 내용인데, 많은 복선들, 요즘 말로는 떡밥을 뿌려놓았기 때문에 이를 찾아가는 재미와 멋진 대사들, 뛰어난 연기,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대의 변화와 상관없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흥미로운 소재인 복수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무척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넷플릭스의 영업정책에 따라 전체 드라마의 절반까지만 공개되었는데, 복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문턱에서 전반부가 끝났기 때문에 넷플릭스의 영업정책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높았다.

이 드라마는 '복수'라는 소재와 관련하여 복수의 필연성이라는 구조적 장치를 만들려다보니 복수의 동기가 되는 학교폭력이 매우 잔인하고 적나라하게 묘사된다. 이로 인해 대해 관객은 주인공을 동정하며 분노할 수 밖에 없고, 드라마의 진행과 함께 복수가 전개됨에 따라 통쾌함과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악역인 일진들이 고대기로 주인공을 괴롭히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그걸 보면서 굳이 저렇게 과장해서 이야기를 만들었어야 했나라고 생각하게 되지만, 실제로 있었던 일을 차용했다는 것을 알면... 어린 아이들이 이다지도 악해졌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복수...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동해복수법이 실은 관대한 처벌이라는 견해가 있다고 한다. 정당방위의 경계는 어디까지인가하는 문제와 유사하다. 참 다루기 어려운 문제이다.
물론, 이는 법적인 관점에서의 입장이고, 예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분명한 입장을 가르쳐주셨다.

(마태복음 5:21-24)
21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마태복음 5:25-26)
25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고발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26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마태복음 5:38-42)
38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40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41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42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마태복음 5:43-48)
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7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이 말씀대로라면 주인공은 그토록 피해를 당하고서도 복수를 해서는 안된다는 것인가라는 질문이 있을 것 같다.
예수님의 말씀대로라면 복수를 해서는 안되는 것이 명확하다. 그 이유는 복수가 우리의 손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기 때문이다.

(로마서 12:17-21)
17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20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복수라는 단어로 인해 상승된 혈압과 악다문 이와 움켜쥔 주먹을 이완시키고 생각해보면, 복수는 반드시 하나님께 있어야 한다. 하나님만이 공의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이며, 하나님만이 온전한 복수를 행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예수님의 말씀대로라면 먼저 다른 사람에게 복수를 당할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 말씀대로라면... 드라마와 같이 처절하고 안타깝고 분노할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걸음 물러나서 자극적인 재미와 인기, 그리고 돈벌이를 위해 이와 같은 드라마가 출현하는 세태를 바라본다.
드라마 속에서 복수의 동기가 된 사건들이 현실에서 발생했다는 점은 참으로 염려되는 상황이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고 하지만, 현실에서 차용된 이야기라는 점은 드라마 속 이야기에 현실감을 부여하고 더욱 몰입하게 만든다. 더군다가 소재가 복수라는 점은 드라마 속 이야기를 더욱 흥미롭게 만든다. 게다가 이처럼 많은 관객을 대사으로 하는 드라마에서 다루어진 사건은 실제 발생빈도와 무관하게 저절로 보편성을 획득하게 된다. 어쩌면 어느 범죄자가 드라마를 보며 영감을 얻을지도 모른다. 관객들은 재미있다고 하고, 드라마는 인기를 얻는다. 그리고 이와 같은 재미와 인기, 그리고 돈벌이의 공식은 더욱 확고해진다.
이러한 세태 속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런 류의 드라마의 출현빈도에 따라 예수님의 말씀이 희미해져간다는 것이다. 현실의 세상에서도, 드라마 속의 세상에서도 점점 흉폭해지는 세태 속에서 가학적인 폭력은 정도가 점점 심해져가고, 복수는 점점 공감을 얻어간다. 그리고, 특별히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강조해서 말씀하셨던 예수님의 가르침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복수는 내게 있다"고 말씀하신 공의로우신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은 잊혀져간다.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무자비한 세태 속에서 이러한 현상은 더욱 확고해진다.

(로마서 1:28-31)
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이것은 점차 잔인하고 흉폭해지는 세태를 바라보는 감상이고...
이 드라마와 관련해서 글을 신문기사 한편을 보게 되었다. 제목은 "국제적 망신... <더 글로리>가 드러낸 K-기독교의 부조리"이며, 대중문화가 그려내는 한국 교회의 위선을 이번 기회에 성찰하라는 주제였다. 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가 화제다. 지난 11일 넷플릭스 톱 10에 따르면, 지난 2일부터 지난 8일까지 8258만 시청 시간을 기록해 TV 비영어 부문 1위를 차지했다.
<더 글로리>는 복수극이다. 학창시절 박연진(신예은 분) 일당에게 심한 폭력 피해를 당한 문동은(송혜교 분)이 성장해 가해자들을 복수한다는 게 이야기의 뼈대다. 드라마를 아직 접하기 전이라면 얼핏 이런 설정이 과도하지 않나 하는 인상이 들 수도 있다. 필자 역시 회차를 거듭할수록 문동은을 응원하게 됐고, 가해자들을 응징할 때마다 쾌감을 느꼈다.
학창시절 기억이 떠올랐다. 중·고등학교 시절 필자는 문동은처럼 매일 같이 얻어맞으며 학교생활을 했다. 그래서 학교를 벗어나는 일만 꿈꿨다. 마침내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날, 학교에 오겠다던 부모님을 극구 오지 말라 했고, 졸업식을 마치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왔다. 졸업 앨범은 오는 길에 내다 버렸다. 대학 진학 후 한동안 가해자들을 가장 가혹한 방식으로 응징하겠다는 마음에 사로잡힌 나날을 보냈내기도 했다. 적어도 필자는 문동은의 복수극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꼈다. 이 드라마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낀 이들도 한결같이 지난날 '당한 게' 많았다고 털어놓는다.
이 드라마가 주제로 잡은 학교폭력, 줄여서 '학폭'은 대한민국 사회를 지배하는 부조리 중 하나다. <더 글로리>가 그리는 학폭은 실로 끔찍하다. 드라마 속 주인공 문동은이 학폭을 당한 시기는 2000년대 초반이지만, 지금도 학폭 가해자들이 언론에 등장할 정도로 현재 진행형인 이슈다. 언론을 통해 전해지는 수위는 단순 폭력을 넘어 범죄로까지 진화한 상태다. 문동은이 현실에 등장해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이유다.
회개하면 용서받을 수 있을까
이 드라마에는 또 하나의 부조리 코드는 바로 '교회'다. 문동은을 괴롭혔던 가해자 중 한 명인 이사라(김히어라 분)의 아버지는 제법 큰 교회를 담임하는 목사로 이사라는 교회에 나가 찬양하고 기도한다.
이사라의 구원관은 나름(?) 신실해 보인다. 문동은에게 거액을 건네며 이사라가 하는 말에 그의 구원관이 잘 엿보인다.
"난 너한테 한 짓 다 회개하고 구원받았어."
이 드라마가 본격적으로 교회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사라란 캐릭터는 최근 대중문화가 한국 교회를 바라보는 시선을 응축해 보여준다.
지난 2019년 9월부터 11월까지 KBS 2TV를 통해 방송된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주인공인 동백이를 입양한 목사 부부는 겉다르고 속이 다른 위선자로 나온다.
넷플릭스는 한국 교회의 위선을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전세계적인 화제를 모았던 드라마 <오징어게임>은 개신교 교회에서 흔하게 하는 기도를 대놓고 비꼬고, <수리남>에선 마약상이 신분세탁 수단으로 목사직을 선택한다.
이런 설정은 왜 나오게 됐을까? 교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왜곡돼서일까?
그렇지 않다. 과거 끔찍한 학폭을 저질렀음에도 낯빛 변화 없이 "회개하고 구원받았다"고 하는 이사라의 캐릭터는 한국 교회에서 흔하게 접하는 값싼 용서의 복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한국 교회가 설파하는 값싼 용서와 같은 복음이 오히려 부조리를 부채질한다는 지적은 늘 있었다. 문제는 이런 복음이 여전히 교회에 만연해 있고 목회자의 변화는 더디다는 점이다.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정치인·법조인 등 공적 영역에서 상당한 지위를 가진 공인이 직위를 이용해 엄청난 범죄를 저지르고도 교회에 출석한다. 이들이 두 손 모아 기도하며 화해와 용서를 입에 올리는 모습이 언론을 통해 퍼져도 교회는 아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이뿐만 아니다. 학력위조 의혹이 대법원을 통해 인정된 대형교회 목사가 타 교단 계열 종합대학 이사장으로 취임해도 아무런 문제 제기가 없다.
넷플릭스는 전세계인이 콘텐츠를 보는 플랫폼이다. 게다가 한국 드라마 등은 전 세계적으로도 인기가 높다.
지금까지 한국 교회는 언론·대중문화에서 교회를 부정적으로 그리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며 집단행동도 불사했다. 하지만 세계적인 동영상 플랫폼인 넷플릭스에는 그렇게 하려 해도 할 수 없는 구조다.
과거 대중문화가 한국 교회를 부정적으로 그린다고 불평만 하다 중요한 교회 개혁의 기회를 놓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 결과 대중은 더 이상 개신교 교회의 복음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더 글로리>를 둘러싼 반응만 해도 그렇다. 시청자들은 회개하고 구원받았다는 이사라에겐 눈살을 찌푸리고, 복수극을 펼치는 문동은에겐 응원의 마음을 보내지 않나.
이제는 세계인들도 K-기독교(개신교)의 실체를 보게 됐으니 자업자득이다. 우리 교회가 어쩌다 이런 취급을 받게 됐는지 반성하며 성찰할 일이다.

드라마의 인기를 통해 성경말씀이 잊혀져가는 세태의 변화를 바라보는 것과 달리, 이글은 기독교에 대한 명시적인 질책이다. 마치 수십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공중전화가 삐삐를 거쳐 PCS를 지나 휴대폰으로 바뀌어가는 변화를 바라보는 것과 달리, 코로나로 인해 단 3년만에 비대면이 일상화된 세상의 변화를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제는 세계인들도 K-기독교(개신교)의 실체를 보게 됐으니 자업자득이다."라는 문장은 마치 스프링이 압축되다가 각 권선들끼리 닿게되어 더 이상 압축될 수 없게 된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나 이 글을 통해 이 세태 속에서 교회가 어떻게 비쳐지고 있는지를 생각해 볼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된다.
- 드라마에 등장하는 가해자 중 한 명이 목사의 딸이다.
- 드라마 속에서 목사와 교회의 이미지는 부정적으로 그려지곤 한다.
- 드라마에 등장하는 가해자의 대사 중에서 "(자신이) 회개하고 구원받았다"고 말하는데 이는 한국 교회의 값싼 용서의 복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 현실 속에서도 엄청난 범죄를 저지르고도 교회에 출석하는 공인에 대해서 교회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 교회가 개혁의 기회를 놓쳤기 때문에 대중은 더 이상 개신교 교회의 복음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 세계인들도 K-기독교(개신교)의 실체를 보게 됐으니 자업자득이다.
위의 글을 쓴 이는 학교를 다니는 동안 학교폭력의 피해자였기 때문에 드라마에 더 집중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더욱 돋보기를 들고 바라볼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가해자 중 한 명이 목사의 딸이라는 설정 때문에 현실 속의 교회와 목사, 목사의 딸을 모조리 싸잡아서 드라마 속의 가해자 아버지가 시무하고 있는 교회, 목사의 딸로 설정된 가해자와 동일시하는 것은 착시이다. 다른 드라마에서 혹시 그릇된 교회나 목사가 등장한다고 해서, 그러한 설정이 현실에서 차용한 것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교회와 목사가 그릇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일부의 사건이나 그로부터 비롯된 드라마 속 설정을 일반화시켜서는 안되는 것이다. 드라마에 목사의 딸이 헛소리를 하고 관객들이 드라마 속 등장인물에 대해 눈쌀을 찌푸린다고 해서 그것이 대중이 교회의 복음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이유를 나타낸다거나 세계인들이 K-기독교(개신교)의 실체를 보게 됐으니 자업자득이라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일반화로 생각된다. 만일 드라마 속에 등장한 가해자의 말과 설정때문에 K-기독교(개신교)가 비난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면,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K-학교, K-학생, K-교사, K-,경찰, K-건설회사, K-명품샵, K-방송국, K-기상캐스터, K-골프장, K-항공사, K-스튜어디스, K-화가 등등 모두가 비난의 대상이 되어 버릴 것이다.
게다가 개신교 교회라고 특정해서 지적하는 모습은 명백히 개신교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보여준다. 드라마 속에서 과거 끔찍한 학폭을 저질렀음에도 낯빛 변화 없이 "회개하고 구원받았다"고 말하는 가해자의 대사를 통해 과연 한국 개신교 교회의 복음을 값싼 용서의 복음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면... 동의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부인하기도 어렵다. 물론 일부의 모습 때문이지만, 실제로 그릇된 복음, 마치 이단과도 같은 복음이 전해지고 있으니 말이다. 교회가 과연 교회 본연의 모습을 지니고 있는가에 대해서 목회자와 성도는 일기를 쓰듯 날마다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해야 한다. 드라마를 통해서까지 비난을 받게 되는 현실을 반성해야 한다. 분파주의, 경쟁주의, 배금주의, 물질주의, 물량주의, 권위주의, 교권주의, 축복신앙, 외식주의, 신비주의, 기복신앙, 업적주의, 개인주의 등에 찌들어 있지 않은지. 과연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하게 알고, 또한 삶 속에서 행하면서 살고 있는지. 혹시 세상 가운데서 교회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안타까운 것은 정말 본이 되는 교회의 모습을 발견하기가 어렵다는 현실이다. 제대로 배우지를 못하다보니 제대로 실행하려고 해도 실행이 어려운 현실인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 기록된 교회의 모습을 실천하고자 애쓰는 교회를 보게 되면 너무나 반갑고 소중하게 생각된다...

흔히 목회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로 사신 교회"라고 말한다. 그리고 성도들은 이에 대해 "아멘"이라고 말한다. 목회자와 성도는, 그래서 교회는 이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모임으로서 이 세상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철저하게 행해야 한다.
그래서 교회는 "더 글로리"라는 드라마로 인해 질책과 비난을 받게 되는 현실을 극복하고,  "더 글로리"라는 드라마 속에 나오는 비극적인 일이 현실에서 발생하지 않도록,  마침내는 "더 글로리"와 같은 드라마가 만들어지지 않는 사회를 이루도록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의 영향력을 발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