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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중 교수, "병원 10분 거리에 살며 환자 살린 서울아산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

아리마대 사람 2023. 6. 27. 14:37

올바른 교차로 우회전 방법

 

차량 신호가 적색일 때 일시정지를 의무화한 개정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의 계도 홍보 기간이 끝남에 따라 2023년 4월 22일부터 우회전 일시 정지 위반 차량에 대한 본격적인 단속이 시작되었다.
개정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에 따라 교차로에서 우회전할 때 전방 차량 신호가 적색이면 무조건 횡단보도 앞에서 일시 정지한 이후 우회전해야 하며, 우회전 중 만나는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거나 건너려는 보행자가 있으면 일시 정지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로교통법은 보행자를 보호하도록 바뀌었지만, 실제로 교차로 우회전 중 보행자가 희생되는 사고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최소한 횡단보도에서만큼은 보행자를 최우선으로 배려하는 교통문화가 필요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병원 10분 거리에 살며 환자 살린 주석중 교수, 교통사고로 별세"


병원 10분 거리에 살면서 응급 환자들의 수술을 해왔던 서울아산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주석중 교수가 지난 (2023년 6월) 16일 교통사고로 숨졌다.
송파경찰서는 지난 16일 오후 1시20분쯤 서울아산병원 앞 아파트 교차로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던 우 교수가 우회전하던 덤프트럭에 치이는 사고가 발생해 사망했다고 17일 밝혔다. 유가족들은 오는 18일부터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주 교수의 본인상으로 장례를 치른다. 발인은 20일이다.
1988년 연세대 의대를 졸업한 주 교수는 세브란스병원에서 흉부외과 전공의를 수료했고, 1998년 서울아산병원 흉부외과 전임의 근무를 시작했다. 2005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의사 면허증을 취득하고, 같은 해 하버드 의대 버밍엄 여성병원 심장외과 임상 전임의를 거쳤다. 울산의대 흉부외과 교수이자 서울아산병원 심장병원 대동맥질환센터 소장이기도 한 그는 병원 근처에 거주하며 24시간 대기해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바로 수술실로 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20년부터 대동맥질환 전담팀을 꾸려 치료한 후 수술 성공률을 98%까지 높였다는 연구 성과도 발표하기도 했다.
의료계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난 동료를 추모했다. 대한의사협회 회장을 역임한 노환규 대한정맥통증학회 회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주 교수가) 새벽까지 대동맥 응급수술을 마친 후에 잠깐 집에 다녀갔다가 다시 자전거를 타고 병원에 나오는 길에 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충격이 가시지 않는다"며 "국내 대동맥수술의 수준을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린 '탁월하고 훌륭한'이라는 단어로 표현해낼 수 없는 인재 중의 인재"라고 전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도 보도되었다.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 주석중 집사 별세"

 

서울아산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인 주석중 집사(주님의교회)는 지난 16일 서울아산병원 인근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다 우회전하던 덤프트럭에 치여 세상을 떠났다. 대형 병원의 원장을 역임하거나 큰 상을 받은 적이 없지만, 환자를 위해 헌신한 그의 삶이 알려지면서 수많은 이들이 비통해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에 따르면, 주 교수는 서울아산병원 심장병원 대동맥질환센터 소장으로서 응급수술을 대비해 병원에서 10분 거리에 살며 환자들을 밤낮으로 치료해왔다. 30년 넘게 의료 현장에서 환자들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개인의 시간보다 의업에 24시간을 우선했다. 고인은 국내 의료계에서 대동맥 수술 명의로 평가받았다. 대동맥박리 등 대동맥질환, 대동맥판막협착증 등 응급 수술이 잦고 의사 인력이 많지 않은 전문 분야에서 이름을 널리 알리며 '대체 불가능한 인재'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주 교수는 양손을 다 사용하는 수술에 익숙해지려고 귀가 후에도 왼손 젓가락질·바느질 연습까지 했다. 생전에는 병원 소식지에 "장시간 수술이 버거울 때가 있지만, 환자가 극적으로 회복되면 힘들었던 것을 다 잊는다"고 썼으며, 술과 골프도 즐기지 않았다.
한편 20일 120석이 넘는 장례식장엔 동료 의사와 환자, 교회 관계자 등 주 집사를 추모하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주 집사는 바쁜 의사 생활에도 성가대 새벽반 일원으로 활동할 만큼 신앙이 독실했다고 전해진다. 주 교수는 이날 오전 9시 찬송가 '주께로 가까이를 들으며 장지인 경기 벽제로 떠났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도 전해졌다.

"식사 시간조차 아까워서… 故주석중 교수 아들 울린 라면 스프"


제가 환자의 치유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것은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but what can I do in the actual healing process? Absolutely nothing. It is all in God's hands.

지난 16일 불의의 교통사고로 숨진 고 주석중 서울아산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의 장남 주현영씨가 최근 부친의 유품을 정리하다 뒤섞인 서류 속에서 아버지가 평소 사용하던 만년필로 직접 쓴 몇 개의 기도문을 봤다고 전했다. 그는 "정성을 다해 수술하고 환자를 돌보지만 내 힘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니, 하나님께서 도와주십사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을 그렇게 적어두신 듯하다"며 고인에 대해 애틋함을 내비쳤다.
고(故) 주석중 교수의 장남 주현영씨가 유족을 대표해 추모객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주씨는 27일 "따뜻한 위로와 격려로 저희와 함께해 주신 덕분에 아버지 장례를 무사히 마쳤다"라며 "많은 분께서 아버지가 평소 어떤 분이셨는지 얘기해 주시고, 진심 어린 애도를 해 주셔서 가족들에게 큰 힘이 되었다"고 애도의 뜻을 전한 이들에게 감사해했다.
주씨는 장례를 마치고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찾은 아버지의 연구실에서 다시금 목메는 경험을 했다고 전했다. 주씨는 "책상 서랍 여기저기, 그리고 책상 아래 한 쪽에 놓인 박스에 수도 없이 버려진 라면 스프가 널려 있었다"며 "제대로 식사할 시간을 내기도 어려워서, 아니면 그 시간조차 아까워서 연구실 건너 의국에서 생라면을 가져와 면만 부숴 드시고 스프는 그렇게 버려둔 것이 아닌가 여겨졌다"며 애통해했다.
그러면서 "오로지 환자 보는 일과 연구에만 전심전력을 다하시고 당신 몸은 돌보지 않던 평소 아버지의 모습이 그대로 느껴져 너무나 가슴 아팠다. 방금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나가신 것 같은 옷가지들과 책상 위 서류들과 몇 개의 메스와 걸려 있는 가운 등 금방이라도 돌아오실 것 같은데 다시 뵐 수 없음에 가슴이 미어졌다"며 마음 가득한 그리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빈소에는 주 교수로부터 치료를 받은 수많은 환자가 찾은 것으로 전해졌다. 주씨는 "아버지 빈소가 마련된 첫날 펑펑 울면서 찾아온 젊은 부부가 있었다. 갑작스러운 대동맥 박리로 여러 병원을 전전하였으나 어려운 수술이라며 모두 기피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저희 아버지께서 집도하여 새로운 생명을 얻었노라며 너무나 안타까워하고 슬퍼했다"면서 "아무리 위험한 수술이라도 '내가 저 환자를 수술하지 않으면 저 환자는 죽는다는 생각이 들면 내가 감당해야지 어떻게 하겠냐'고 '확률이나 데이터 같은 것이 무슨 대수냐'고 그러셨던 아버지 말씀이 떠올랐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아버지께서는 너무나 힘들고 긴장되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심장 수술에 정성을 다해 도와주신 많은 분께 늘 고마워하셨다"며 "마음을 말로 표현하는 데 능한 분이 아니셔서 아버지의 진심이 전해지지 못했다면 이렇게나마 아버지의 뜻을 전해 드리고 싶다"고 거듭 감사함을 내비쳤다.
주씨는 아버지인 주 교수는 얼마 전 당신의 운명을 예감이라도 하듯 어머니에게 "나는 지금껏 원 없이 살았다. 수많은 환자 수술해서 잘 됐고, 여러 가지 새로운 수술 방법도 좋았고, 하고 싶은 연구 하고, 쓰고 싶었던 논문 많이 썼다.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소명을 다한 듯하여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주씨는 "많은 분께서 저희 아버지를 누구보다 따뜻하고 순수한 가슴을 지닌 사람으로 기억해 주셨다"며 "여러분이 기억해 주신 아버지의 모습과 삶의 방식을 가슴에 새기고, 부족하지만 절반만이라도 아버지처럼 살도록 노력하겠다"며 고인을 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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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를 다니는 동안 이사를 했다. 매일 아침 버스를 타고 장거리 통학을 하면서 중학교를 졸업했다.

그리고 소위 강남권의 고등학교에 배정되어 다니게 되었다. 첫시험을 치른 날, 내가 다녔던 중학교와는 무척 많이 다르다는 것을 처절하게 체험하게 되었다. 그리고 낯선 참고서의 이름들을 접하게 되었다.

수학의 정석, 성문 영어, 맨투맨 영어...

학교를 다니는 동안 가장 큰 좌절을 맛보게 만들었던 그 첫시험에서도 100점 가까이 받은 아이들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나로서는 처음 듣는 참고서들을 이미 중학교 때 충분히 공부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했다는 얘기도 듣게 되었다. 과연 지금부터 공부해서 따라갈 수 있을까를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고등학교 입학 당시의 영어나 수학실력은 차이가 존재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우리의 삶의 시작은 그렇지 않다.

모든 사람은 한 개의 삶이 주어진 채로 태어나 한 번의 삶을 살아간다. 모든 사람은 스스로 태어나야겠다고 생각해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주어졌을 뿐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른 채 삶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에는 마치 고등학교 입학 당시의 영어나 수학실력과 같이 차이가 존재하게 된다. 잘 사는 사람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한 개의 생명이 주어진 채로 살아가면서 여러 생명을 살린다면, 잘 사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의사로서의 삶을 살면서 "나는 지금껏 원 없이 살았다. 수많은 환자 수술해서 잘 됐고, 여러 가지 새로운 수술 방법도 좋았고, 하고 싶은 연구 하고, 쓰고 싶었던 논문 많이 썼다.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소명을 다한 듯하여 감사하고 행복하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잘 사는 것이 아닐까 싶다.

마치 한 개의 생명이 주어진 채로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것과 같이...

 

(다니엘 12:3)
3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