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속에 잠깐 스쳐가는 말씀 한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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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 한 조각

기적 속에서

아리마대 사람 2023. 7. 26. 16:49

근대 및 현대사회의 기술 및 경제적 성장과 더불어 가장 각광을 받아온 학문분야는 아마도 공학분야일 것이다.
경제발전의 가속이 둔화되고 향후의 생계에 대한 보장이 불확실한 지금의 시대에도 공학분야는 지금까지의 경험에 근거하여 안정적인 생계를 보장해줄 것이라는 기대 덕분에 진로선택에 있어서 선호되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공학이란 말의 영어단어인 엔지니어링(engineering)의 어원인 엔진(engine)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다' 또는 '발명하다'라는 뜻으로서 '타고난 재능'이라는 뜻의 라틴어 단어인 인제니움(ingenium)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타고난 재능 → 능력, 지능 → 기교, 기술 → 기구, 기계의 의미로 발전한 것으로 여겨진다. 엔지니어링을 수행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엔지니어(engineer)라는 단어는 기원후 200년경부터 대포나 투석기와 같은 군사적 장비를 개발하고 운용하는 직업인을 일컫는 말로 사용되었으나, 현대에는 공학 활동을 수행하는 공학자를 의미하게 되었다.
공학을 본래의 의미인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다' 또는 '발명하다'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공학은 문명의 시작과 발전의 과정에 참여하고 동행해 왔다고 할 수 있으나, 오늘날 우리가 인식하는 학문으로서의 공학은 16, 17세기 유럽에서 일어난 과학혁명에 힘입어 체계화된 것이다. 과학혁명이 일어나고 많은 분야에 과학적 사고가 도입되면서 과학적 공학이 탄생한 것이다. 그렇게 공학은 과학적 지식을 실제 목적에 적용하기 위해 필요한 판단력과 응용력, 문제에 대한 답을 생각해내는 상상력, 그리고 새로운 장치나 공정의 성능과 비용 등을 예상하는 분석력 등을 갖춘 학문으로서 자리잡게 되었다. 과학자가 물리계에 대한 실증적이고 체계적인 지식을 더하는 일을 한다면, 공학자는 이러한 지식을 실용적인 문제에 적용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공학의 정의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 공학이란 기술적 문제를 발견하고 기술적 해결책을 제시하는 학문이다.
- 공학은 과학적이고 잘 조직된 지식을 현실적인 문제해결에 체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이다.
- 과학 기술의 진화를 측정(measurement) → 모델링(modeling) → 조작(manipulation) 의 3단계로 구분한다면, 측정 단계를 과학의 탄생으로 정의할 수 있으며, 조작 단계를 공학으로 정의할 수 있다.
- 과학은 연구하여 문제를 발견하고, 공학은 개발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 공학은 기계적 생산품 또는 발명품 이상의 체계적 사고의 과정이며 방식이다.
- 공학은 기계류와 관련된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를 포함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것으로서, 어떤 특정한 과제를 수행하는데 있어서 요구되는 실천적인 문제 해결의 기법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가 중시되다보니 체계적 사고의 방식을 포함하기까지 공학의 정의가 확대되고 있지만, 전통적으로 과학적 공학은 자연과학에 기반하여 체계화되었으며, 자연과학과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래서 위에서 간략히 살펴 보았듯이 공학은 일반적으로 자연과학을 응용하는 학문으로서 정의된다. 전통적인 공학의 대표적인 분야인 기계공학, 화학공학 분야의 제반활동들은 모두 철저하게 물리학 및 화학이라는 자연과학에 근거하여 이루어진다. 자연의 에너지를 인간에게 유용한 형태의 에너지로 변환하여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활동으로서의 공학의 근본이 되는 에너지의 변환과정은 자연과학의 법칙을 따라 이루어진다는 것이 실증되어 있다.
이처럼 자연현상은 자연과학을 통해 수학적으로 기술되며, 자연법칙으로서 검증과 정식화의 과정을 거치고, 공학을 통해 활용되어 경제적 가치 창출 및 인간의 문명과 사회 발전에 활용된다. 뒤집어서 생각하면, 인간문명의 발전은 자연현상에 대한 신뢰에 기반하며, 정식화가 가능한 자연의 특성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자.
인간문명의 재료인 인간을 둘러싼 환경, 곧 자연이 정식화가 가능한 형태로 존재하면서 안정적으로 운행되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무한한 우주가 일정한 법칙을 따라 운행되며, 그 가운데에서 규칙성과 안정성이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은 기적이라고 할 수 있... 아니, 기적이다.

 
생각해보자.
이러한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의 삶이 기적이다. 우주 속에 존재하는 지구, 지구 상에서 겪게 되는 환경이 규칙적이며, 인간이 이러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기적이다.

 
생각해보자.
규칙적인 환경이 삶의 일부가 되고 그 속에서 영위하고 있는 우리의 일상과 인생이 기적이다. 해마다 계절이 찾아보고, 매일 해가 뜨고 지며, 아침과 낮과 저녁과 밤을 보내는 가운데 일상의 삶을 살아가며, 자손을 낳고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기적이다.

 
생각해보자.
하나님을 닮은 모습을 지니고, 비록 이유와 목적과 방향은 모르지만 지금 이 순간, 호흡과 소화작용을 비롯하여 내가 미처 인지하지 못하는 생명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나의 존재가 기적이다.

 

우리는 기적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적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다.
 
(로마서 1:20)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그리고, 이러한 기적 속에서 하나님이 공의로우신 분이심을 알 수 있다. (참고)
 
이 놀라운 규칙성과 안정성의 기적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늘상 숨쉬는 공기의 존재를 감사의 대상으로 인지하지 못하듯이, '행복'이라는 꽃말을 지닌 네잎 클로버들의 틈에서 '행운'이라는 꽃말을 지닌 세잎 클로버를 찾듯이, 다른 형태의 기적을 구한다. 자신을 둘러싼 우주와 자연과 생명과 인생의 환경이 지닌 규칙성과 안정성이라는 기적이 이미 너무나 당연한 일상의 행복이 되어 있기 때문에 이러한 기적이 기적임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다른 형태의 기적'은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기이한 일"로서 정의된다. 여기서 말하는 상식이란 삶 속에 자리잡은 우주와 자연과 생명과 인생의 환경이 지닌 규칙성과 안정성을 가리키는 것이다. 인간의 이성과 지식으로 정식화가 가능하며 법칙으로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일상화된 규칙성과 안정성을 지닌 환경이 이미 너무나 당연한 일상과 상식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환경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권능과 공의로우심에 기반한다. 창조주 하나님의 성품이 창조된 만물 가운데에 드러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히브리서 3:4)
4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다는 데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들이 생각하고 사람들이 바라는 기적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성경을 읽으면서 성경 속에서는 마치 기적이 일상처럼 일어났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그렇지가 않다. 이는 사무엘서를 참고해서도 쉽게 알 수가 있는 바이다.
 
(사무엘상 3:1)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사무엘의 시대에도 이미 이상(vision)이 흔한 시대는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말씀을 주시는 일이 흔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근거로 생각할 때, 사람들이 생각하는 각종 기적의 출현은 더욱 흔하지 않았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기적의 발생을 전해주고 있다. 각종 천재지변이 일어나고, 바다가 갈라지고, 바위에서 물이 나오고, 소리를 지르니 성이 무너지고, 병든 사람이 낫고,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등 사람들이 생각하는 기적의 발생을 분명히 기록하여 전해주고 있다.
기적이 상식이 된 가운데에서 일어나는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기이한 일"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어떻게 만물에게 부여된 기적적인 질서가 깨어지는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정식화가 가능할 정도의 규칙성과 안정성이 부여된 채로 창조되고 운행되는 만물은 하나님의 일하심과 성품을 분명하게 드러내어 준다. 그런데 그 가운데에서 기이한 일이 일어난다면 이는 만물의 규칙성과 안정성이 깨어지는 특이점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어떻게 만물에게 부여된 질서가 깨어지는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누가 만물에게 부여된 질서를 깨뜨리는 일을 일으킬 수 있을까?
만물에 질서를 부여하시 분은 하나님이시다.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으로만 가능한 일이다. 만일 만물에 부여된 질서를 거슬러야 한다면, 질서를 부여하는 일 못지 않은 능력이 요구되며 이러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주체는 하나님 자신 외에는 없다. 그렇다면 그 질서를 깨뜨리는 특이점의 발생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임을 알 수가 있다.
왜 하나님은 스스로 만물에게 부여하신 질서를 스스로 깨뜨리는 일을 하실까?
만물에게 부여된 질서는 하나님의 성품인 '공의로우심'을 분명하게 드러내어 준다. 그리고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질서 가운데에서 우주를 경영하신다. 하나님의 경영은 온전하게 선하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는 수많은 기적의 바램을 담은 기도가 올라간다. 그러나 실제로 이루어지는 기적은 흔하지 않다. 그렇기에 기적이 여전히 기적으로 불리고 있는 것이다. 이로부터 질서가 깨어지는기적이라는 특이점의 발생은 비록 흔하지는 않지만 전적으로 하나님의 경영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루어지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미 죽은 사람이 되살아나는 것은 인생과 생명의 질서를 거스르고 깨뜨리는 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전적으로 창조주 하나님의 필요에 의해서,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이다.
 
성경을 통해서 볼 때, '기적'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성품을 거스르기까지 하시면서, 자신이 창조하신 만물에 부여하신 질서를 스스로 깨뜨리기까지 하시면서 자신을 스스로 드러내시는 행위로 이해할 수 있다. 드러내심의 목적은 하나님 스스로의 살아계심을 보여주시기 위한 행위로 이해할 수 있다. 살아계심을 보여주심의 목적은 기적을 본 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존재를 깨닫게 하셔서 하나님을 찾도록, 믿도록 하기 위함으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질서가 깨어졌다는 사실은 질서를 부여하신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의 일하심을 보며주는 증거인 것이다.
그러니까 질서도, 기적도 모두 하나님이 뜻하시고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의 증거이며, 공의롭고 신실하신 하나님의 성품과 더불어 하나님의 권능과 일하심을 드러내는 증거이다.
 
(로마서 1:20)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질서 속에서도, 기적 속에서도, 모든 것 가운데에서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으니 하나님을 모른다고, 하나니을 볼 수 없다고 핑계댈 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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