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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바 시게루, "새로운 자민당 총재"

아리마대 사람 2024. 10. 7. 00:56

우리나라는 국민의 직접 투표를 통해 대통령을 선출한다. 그러나 내각제 국가인 일본은 다수당 대표가 내각총리대신이 된다. 따라서 일본의 제1여당인 자민당의 총재 선거는 곧 일본의 총리를 선출하는 선거가 되는 것이다.
2024년 9월 27일 오후 일본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이시바 시게루(67) 전 간사장이 28대 총재로 선출되었다. 이 말은 곧 이시바 시게루씨가 차기 일본 총리로 결정되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이시바 시게루씨를 소개하는 뉴스를 접하게 되었다.
 
27일 도쿄 자민당 본부에서 치러진 자민당의 28대 신임 총재 선거에서 이시바는 유효투표 총 414표 가운데 215표를 획득해 과반수를 차지했다.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경제안보상은 194표였다. 자민당 총재 임기는 3년이다. 앞서 1차 투표에서는 다카이치는 181표를 득표해 1위를 차지했다. 당원·당우들에게서 109표를 받았고, 의원 72명이 그에게 투표했다. 당원·당우와 의원들에게 각각 108표·46표를 얻은 이시바 시게루가 2위였다.
이시바는 1957년 2월 도쿄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그의 정치적 고향’은 보수 성향이 강한 돗토리(鳥取)현이다. 건설 관료 출신으로 돗토리현지사, 참의원을 지낸 부친 이시바 지로(石破 二朗)의 영향이다. 부친의 고향인 돗토리현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마친 뒤 그는 게이오(慶應)고에 입학해 1979년 게이오대 법대를 졸업했다.
이시바 신임 자민당 총재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 중 하나는 일본열도 개조론을 주창한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宋) 전 총리다. "다나카 가쿠에이가 없다면 정치가로서 현재 이시바 시게루는 없었다"고 자평할 정도다. 다나카 전 총리와의 인연은 부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다나카를 위해서라면 죽어도 좋다"고 말했을 정도로 그의 부친은 자신보다 10살 아래인 다나카의 오랜 지기로 정치의 길을 함께 했다. 1981년 부친이 사망하자 다나카는 "장례식에 온 3500명의 돗토리 사람들에게 명함을 들고 인사를 돌아라. 이게 선거의 기본"이라며 정계 입문을 권한다. 이시바는 "정치를 하지 말라"는 부친의 유언을 어기고 당시 다니던 은행을 그만두고 정치의 길에 뛰어든다. 1986년 중의원에 당선돼 현재 12선 의원이다.
아베 전 총리와는 오랜 정적 관계다. 아베 정권 시절이던 2007년 자민당이 참의원(상원) 선거에서 패하자, 이시바는 '아베 퇴진'을 들고 나섰다. 아베 2기 정권(2012~2020년) 때에도 반(反)아베 성향은 이어졌다. 당시 그는 자민당 총재선거에 도전했지만 아베에 패했고, 2018년 총재선거에서도 아베와 1대 1로 붙었지만 쓴잔을 삼켰다. 그는 '자민당 내 야당' 소리를 들을 정도로 아베와 곳곳에서 각을 세웠다. 아베를 둘러싼 후원회인 '벚꽃을 보는 모임'이 후원금 스캔들에 휩싸일 때 "철저한 조사"를 요구한 것도 그였다. 아베는 2014년 자신의 정적인 이시바에게 '안보법제담당상'을 제안했다. 하지만 이시바가 이를 거절하며 둘 사이는 완전히 멀어졌고, 이후 줄곧 당내 비주류의 길을 걸었다.
방위청 부장관과 방위상을 지낸 '방위통'인 그는 집무실에 전투기 모형 등을 전시하는 '밀리터리 전문가'로도 꼽힌다. 이번 선거에서 그는 미국의 핵무기를 일본에서 공동 운용하는 핵 공유 논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편, 중국을 겨냥한 아시아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창설을 이번 선거에서 주요 공약으로 제시했다. 때문에 이시바의 당선으로 일본의 안보·방위 전략의 변화가 있을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그는 2012년엔 자민당 간사장을, 2014년엔 지방창생·국가전략특별구역담당상을 지냈다. 다나카 전 총리의 지방 활성화 정책을 담은 '일본열도개조론'(1972년)을 연상하게 하는 '일본열도창생론'(2017년)을 내기도 했다.
이시바는 출마를 앞두고 출간한 책에서 "일·한관계는 윤석열 대통령의 명확한 리더십으로 극적으로 개선됐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 호기를 일본도 활용해 윤 정권이 한국 내에서 조금이라도 유리한 입장이 되도록 가능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적었다. 이같은 역사인식은 한국 입장에서는 눈여겨볼 대목이다. '가해자는 잊어도 피해자는 잊지 않는다'는 소제목을 단 부분에선 싱가포르를 방문했던 일화를 소개했다. 리콴유 싱가포르 수상이 "일본이 싱가포르를 점령했을 때 무엇을 했는지 아느냐"고 물었지만 일본군이 어떤 지배를 했는지 답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일본으로 돌아오고 나서야 그는 일본군이 공포지배를 하고 주민을 중화계, 말레이시아계, 인도계로 나눠 수용했다는 것을 알게됐다고 했다. '가해자로서의 역사를 직시'해야 한다는 말도 남겼다. 그러면서 그는 "일국의 문화와 언어, 제도 및 군대를 잃어버리도록 하는 합병이 얼마나 상대국 국민의 긍지와 아이덴티티(정체성)에 상처를 주는 것인지, 이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 채로는 일·한의 진짜 신뢰관계는 세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또 양국이 허심탄회한 대회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와 함께 "영토, 위안부, 징용공 등 양측 주장에 큰 차이가 있는 과제는 많고 그 근저에 역사 인식 차이가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기술했다.
자민당 의원 사이에선 '공부하는 의원'으로 통한다. 비서가 편의점에서 사온 도시락을 먹으며 사무실에 틀어박혀 정책 공부를 한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로 한국인에게도 알려진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를 좋아한다. 취미는 독서와 요리. 대학시절 4년간 계속 먹었다고 할 정도로 가장 좋아하는 음식으로 카레를 꼽는다. 일본술과 와인을 좋아하며, 철도광이기도 하다. 오랜 시간 짝사랑하다 결혼에 성공한 이야기는 정계에선 널리 알려져있다.
 
이런 뉴스기사들을 접하면서 '응, 그렇구나...'라고 생각하고 넘기다가, 어느 기사 한 구석에서 일본 총리로 선출된 그가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을 접하게 되었다.
일본, 그리고 기독교인...
우리 보다 먼저 기독교를 접한 나라, 그러나 갖은 탄압과 신사참배를 통해 기독교를 포기한 나라, 그래서 현재 기독교인구는 0.5% 미만이라고 알려진 나라, 신사와 사찰은 흔하지만 교회는 찾아보기 힘든 잡신의 나라...
'그런데, 그런 나라 일본의 총리가 기독교인?'
그래서 이시바 시게루라는 인물에 대한 소개, 특히 그의 종교와 관련된 내용을 찾아보게 되었다.
 

이시바 시게루는 일본에서 보기 드문 기독교 신자이다. 일본사회는 한국의 유교와 같이 신토가 사회문화적 기반을 형성한다. 그는 문부과학성의 종교시설 신자 등록 조사상 신토(60.4%)와 불교(35.7%)가 강세인 일본에서 인구비로는 0.37%의 극소수에 불과한 개신교 신자이며, 이는 그의 외가의 영향이다. 외증조부인 가나모리 미치토모는 목사로서 일본 초기 개신교 교회의 주요 인물이었고, 외조부와 어머니도 개신교 신자였다. 아버지가 불교 신자였기 때문에 고향인 돗토리현에 있을 때는 조상의 묘를 찾는 일을 거르지 않았지만, 어릴 적에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돗토리교회에서 활동하던 선교사가 시작한 교회 부속 아이신유치원(愛真幼稚園)에 다녔고, 돗토리대학 교육학부 부속중학을 졸업 후, 게이오기주쿠(慶應義塾)고교에 진학했으며, 게이오대학까지 졸업했다. 그는 18세 때 그의 외증조부가 설립했고, 어머니가 다닌 일본기독교단 돗토리교회(鳥取教会)에서 세례를 받은 후 지난 50여년간 신앙 생활을 계속해 왔다. 도쿄에 머물 때는 일본기독교회 세타가야전도소(世田谷伝道所, 현 세타가야치토세교회(世田谷千歳教会))에 출석하며 교회학교 교사도 담당하였다. 최근에는 일본 CBMC (기독실업인회) 주최의 국가만찬기도회에 내빈으로 참석했으며, 기독교 관련 강연회의 강연자로서 초청받는 일도 많다. 그는 신사 참배를 거부하며, "평생 기독교와 가까이 하며 신앙을 가지고 살아왔다"고 말하기도 했다. 조상 중에는 과거 신사참배 반대운동에 연루되어 투옥된 사람도 다수 존재한다. 그는 가타야마 데쓰, 하토야마 이치로, 오히라 마사요시, 하토야마 유키오에 이은 다섯 번째 개신교도 총리이다.

개인적으로 유명인의 믿음이나 간증을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믿음은 내가 판단하거나 판정할 수 없는 영역이고 오직 하나님께서만 아시는 부분이며, 다른 사람의 간증은 내가 겪은 일이 아니기 때문에 내게는 생생하지도 않고, 또한 시간이 지나면 쉽사리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인기를 먹고사는 연예인이나 운동선수, 지지를 먹고사는 정치인은 그들의 먹고사는 방법의 특성상, 이목을 끌 수만 있다면 과장이나 거짓말도 쉽게 한다는 것을 여러번 지켜본 까닭이다. 물론 그들이 말하는 순간은 어쩌면 진심이었을 수도 있지만, 그들의 '말'보다 더욱 중요하고 어쩌면 진짜로 중요한 그들의 '행동'이 그들의 말에 대한 공감과 설득력을 현저하게 떨어뜨리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그들만을 탓할 수도 없다. 과장이나 거짓말, 혹은 그 이상의 불법을 쉽게 하는 목회자도 많기 때문이다.
그러니 일본의 신임총리가 기독교인이라 한들 내가 관심 가질 문제는 아닐지 모른다. 혹시 그의 눈물겨운 간증을 듣게 된다해도 아마 큰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관심의 끈을 못내 붙들게 되는 것은 일본과의 뒤틀린 관계가 우리 사회에 끼치는 영향, 보다 정확하게는 악영향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과의 관계가 더이상 원수지간이 아니라 이웃사촌으로 정립될 수만 있다면 우리 사회가 일본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분열을 극복하고 화합하여 에너지를 필요한 곳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일본뿐만 아니라 우리의 노력도 필요하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일본의 인정과 진심어린 사과, 그리고 배상이 필요한 분들에 대한 배상은 물론이고, 우리 스스로도 역사의 정략적인 이용 대신, 지나간 역사에 대한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를 통해 과거를 극복해야 할 것이다. 언제까지나 일본과의 관계가 이데올로기가 되어 '친일'이라는 용어를 칼날처럼 휘두르며 치고 받는 국론 분열을 반복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나라는 그보다 더 크고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고,  더 크고 중요한 일을 반드시 성취해내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운 총리 이시바 시게루가...
기독교인의 비율이 0.37%에 불과한 일본의 기독교인인 새로운 총리가...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신실한 기독교인이기를 간절히 바라며, 새로운 한일관계를 시작하는 데에 새롭고도 놀랍게 기여해주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또한 기독교인의 비율이 0.37%에 불과한 '미전도 종족'의 땅 일본에 기독교인의 삶을 보여주어 기독교의 불씨를 지피는 새로운 총리가 되기를 기대해보는 것이다.
기독교인이라면 팔이 우선 안으로 굽고 보는 기독교인의 한심한 바램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작은 기대의 끈을 못내 붙들게 되는 것은 그가 기독교인의 비율이 0.37%에 불과한 '미전도종족'의 땅 일본의 기독교인이기 때문이다. 그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지니고 살았다면 적어도 하나님 앞에서 신실함의 소양을 갖추고 있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을 것만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독교인 총리를 맞이한 일본이 변화되기를, 그리고 그런 일본과 새로운 역사를 시작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그런데...
그렇더라도 '가위바위보를 하더라도 일본은 이겨야 한다'는 고집은 못버릴 것 같기는 하다.

그건 또 다른 문제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