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억지를 부리는 사람들을, 억지를 부리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억지를 부리는 데 있어서 매우 뛰어나기 때문에, 사실상 억지를 매우 잘 부리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차량접촉사고가 발생한 도로 한복판이나 마트의 환불처인 고객센터 앞이나 일상 업무를 처리해주는 행정복지센터 등에서 주변을 아랑곳않고 언성을 높이며 억지를 부리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최근 막무가내로 억지를 부리는 사람을 겪게 되었다.
동일한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은 수용하는 일에 대해 유독 절차를 따지며 화를 내고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수용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들 각각은 생각의 방식도 다르고 어떤 일에 대한 반응도 제 각각일 수 있는 법이니 막무가내더라도 그저 그러려니 생각하기는 했는데... 굳이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된 것은 그 집을 방문했을 때의 작은 놀람 때문이다. 초인종을 누르고 기다리던 중, 현관문에 붙어있던 "교회 패찰"을 보게 된 것이다. 터무니없이 억지를 부리던 상대방의 모습과는 도무지 연관지어 생각하기 어렵던 교회패찰을 보는 순간... 허허... 웃음이 나왔다. 교회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들 각각은 생각의 방식도 다르고 어떤 일에 대한 반응은 제 각각일 수 있는 법이니 막무가내더라도 그저 그러려니 생각하면 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 패찰"을 보는 순간, "교회 패찰"의 의미와 그간의 막무가내 반응이 겹쳐지며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교회 패찰"을 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의미가 '교회를 다닌다'라는 것이다. '교회를 다닌다'라는 삶의 방식은 '교회 공동체에 속하여 예배를 드린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구주로 시인한다'는 삶의 방식을 갖고 있으며, 또한 동일한 삶의 방식을 가진 사람들과 교류를 갖고 살아간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 패찰"을 현관문에 붙여두었다는 것은 '교회를 다니는 데에 있어서 정기적으로 출석하여 예배를 드리는 교회가 명확하게 정해져 있다'는 의미이고, 이는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교회를 다닌다는 사실이 분명하고, 여러분들에게 이를 밝히겠다'는 의미이며, 한걸음 더 나아가 이는 '아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가운데 하나님을, 예수님을, 성령님을 인정하고 인격적으로 친밀하게 지낸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가 있을 것이다.
교회 패찰을 붙여둘 만큼 정기적으로 교회를 가는, 아마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 할 수 있을 법하고, 동시에 이를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알게 하는 사람이 왜 그리도 막무가내였을까 라는 궁금증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교회를 다니면서 그렇게 억지를 부리면서 살아서는 안되는데...
교회를 다니면 굳이 그렇게 억지를 부리면서 살지 않아도 되는데...
교회를 다니면서 그렇게 억지를 부리면서 살아서는 안되는 까닭은 그리스도인은 화목하며 살아야하기 때문이다. 선한 일을 행하려 애써야 하고, 막무가내로 행동함으로써 남에게 원망을 듣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5:23-24)
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로마서 12:17-18)
17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교회를 다니면 굳이 그렇게 억지를 부리면서 살지 않아도 되는 까닭은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알게 되고, 공급받고, 누리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아주 어릴 적에 아버지(내게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생전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아버지없이 자랐지만, 교회를 다니면서 아버지를 원없이 불러봤다."
"나이 먹고 삶을 돌아보니 다 하나님께서 돌봐주셨던 것이다."
나를 만들어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이시다. 나를 만드셨다는 사실은 나를 사랑하시고 기억하신다는 의미이고, 나를 세상에 보내셨다는 사실은 이 세상 가운데에 놓인 나를 지켜보시고 돌보신다는 의미인 것이다. 아무런 의미없이 나를 만드시고, 세상에 보내시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온 우주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돌보시는 아버지가 되어주신다는 사실은 얼마나 놀랍고 위대하고 든든한가! 그러니 '교회 다니는 사람'은 이 사실 때문에 지극히 담대할 수 있는 것이다.
(이사야 49:15)
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언제가 어려운 상황 가운데 목회를 하고 계신 어느 목사님을 만났을 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힘들어 보일지 모르지만 목회 가운데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고 있으니 살아도 천국이고, 부르시면 그 땐 진짜 천국인 것입니다."
'히말라야의 슈바이처'로 불렸던 강원희 선교사님께서도 이와 같은 말씀을 하셨다.
"살아도 천국이고 부르시면 정말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닌가"
삶도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천국을 확신하며 천국을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천국을 약속받았다는 사실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오셨고, 나의 모든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나를 구원하셨고,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심으로써 나도 하나님 나라에 갈 것임을 알려주셨다. 그러니 살아도 기쁘고, 죽음 이후에 대해서도 기쁠 수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은 얼마나 놀랍고 위대하고 든든한가! 그러니 '교회 다니는 사람'은 이 사실 때문에 지극히 기뻐하며 살 수 있는 것이다.
(요한복음 14:1-3)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이와 같은 창조주 하나님, 구원자 예수님을 알 때에 이 세상의 염려도, 근심도, 걱정도 내려놓을 수가 있다.
(시편 121:1-8)
1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2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3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4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5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6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7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8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마태복음 11:28)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광야에서 만나가 공급되었던 것처럼 하나님을 의지할 때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시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12:29)
29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그래서 '교회 다니는 사람'은 맘 편히 살 수가 있다.
(마태복음 6:34)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이처럼 '교회 다니는 사람'은 나를 만들어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게 되고, 구원을 받았음을 알게 되고, 그 구원을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나를 사랑해주신 사랑을 알게 되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것을 받아 누리고 있음을 알게 되기 때문에 세상의 사소한 것들에 대해서는 담대할 수 있고, 평안할 수 있는 것이다.
언젠가 '어떤 그룹의 사람들이 장수하는가'에 관해 실시한 조사결과를 본 적이 있다. 결과만 기억이 나는데, 그것은 '교회 성가대'였다. 그 이유는 아마도 찬양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에 감동하고 감사하며, 밖으로 이를 외치면서 한 주 동안 세상살이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함으로써 정신과 육신의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받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교회를 다니는 것은 그런 것이다.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고, 담대할 수 있고, 평안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 것은 그런 유익이 있는 것이다. 나의 자존감이 회복되고, 향상되어 그리스도인으로서 살 수 있는 것이다.
아렇게 귀한 자존감을 지니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 수 있는데...
왜 사소한 일에 막무가내로 억지를 부리면서 살고 있는 것인가.
왜 값싼 자존심을 부리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모습으로 사는 것인가.
자존감 | 자존심 | |
정의 | 스스로 품위를 지키고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인 '자아존중감'을 간단히 이르는 말. 나 스스로 자신을 귀하게 생각하는 마음. |
다른 사람들에게 굽히지 않고 스스로의 가치나 품위를 지키려는 마음. 나 자신의 귀함을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 |
공통점 | 자기 가치 인식: 자신의 존엄성과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는 자신의 가치에 대한 인식에 근거한다. 자기 존중의 욕구: 다른 사람들에게 존중과 수용과 인정 받음으로써 자신의 존재가 안정되기를 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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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점 | 내적 기반: 자기 자신의 내적인 평가에 기반을 둔다. 자신의 가치와 능력을 스스로 인정하는 데 중점을 두며, 스스로 수용하는 내면적 안정감에서 비롯된다. 심리적 안정감: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에 대해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어, 외부의 비판이나 실패에도 흔들리지 않고, 심리적으로 안정된 상태를 유지한다. 대인관계에 있어서의 공감과 배려: 타인의 피드백을 건설적으로 수용한다. 타인의 가치 또한 존중하여 공감과 배려를 나타낸다. 이를 바탕으로 갈등 상황에서 감정적으로 격해지지 않고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여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으려 한다. |
외적 기반: 타인의 외적인 평가에 기반을 둔다. 타인에게 인정받고 존중받는 데 중점을 두며, 외부 사람의 시선과 평가를 중시하고 외부의 반응에 쉽게 영향을 받는다. 심리적 불안감: 자존심이 높은 사람들은 타인의 평가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방어적이거나, 과도하게 공격적인 반응을 보이는 등 불안정한 상태를 보인다. 대인관계에 있어서의 공격성 또는 회피: 타인의 건설적인 의견도 받아들이지 않고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며, 타인을 경쟁 대상으로 보고 경계한다. 상대방이 자신보다 못하다고 생각되면 거만해진다. 갈등 상황에서 회피하거나 과도하게 공격적인 태도를 보인다. |
자존감과 자존심이 글자 하나의 차이뿐이듯 그 근거는 유사하지만, 생각과 태도를 비롯한 삶의 방식은 전혀 다르다. 마치 이단이나 사이비와도 같이. 자존감이 높은 사람과 함께 지내는 일은 즐겁고 건설적일 수 있지만, 자존심이 높은 사람과 함께 지내는 일은 피곤하고 상처받는 일이 될 수 있다.
이전에는 방송 프로그램에서는 젊은 선남선녀들의 짝짓기 프로그램이 많았지만, 요즘에는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부부들의 이혼상담 프로그램들이 늘어나고 있다. 자존감을 배우지 못한 채 자존심만 품고 결혼했다가 상처를 주고, 또한 상처를 받고 고통에 괴로워하다가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기까지 하는 사람들을 보면 참 안타깝다.
그들 한 명, 한 명을 바라보면 참 불쌍한 사람들인데... 그 불쌍한 사람들이 함께 살면서 서로를 위로하고 서로에게 위로를 얻기는 커녕, 서로에게 상처받고 상처를 주면서 괴로워하는 모습이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시청자의 한 명에 불과한 내가 보기에도 이러한데... 그들을 만들고 이 세상에 보내어 가정을 이루게 하신 하나님이 보실 때는 과연 어떠할까...
부모의 품을 떠나 새로운 가정을 이루거나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덕목은 자존심이 아니라 자존감이 아닐까 싶다.
하나님의 품을 떠나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덕목은 자존심이 아니라 자존감이 아닐까 싶다.
잘못된 인권이나 엉뚱한 자기결정권에 기반한 자존심에 가득차서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삶을 살 것이 아니라...
(사사기 21:25)
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기 인식에 기반한 자존감을 지니고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 가운데에서 세상에 충만한 하나님의 섭리를 보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이사야 43:21)
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그래서 차량접촉사고가 발생한 도로 한복판이나 마트의 환불처인 고객센터 앞이나 일상 업무를 처리해주는 행정복지센터 등에서 언성을 높이며 억지를 부리며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존심만 내세우며 배우자를 공격함으로써 배우자와 자녀들에게 상처주는 가정생활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럴 필요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굳이 이런 생각을 할 필요도 없겠지만, 그럴 필요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만드셨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인간은 자존감으로 가득할 수밖에 없는 존재요, 자존감으로 가득해야만 하는 존재요, 가존감으로 가득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교회를 다닌다'라고 말하려면, 현관문에 교회 패찰을 붙여 놓으려면... 1, 2초 정도 시간을 내어 자신의 속에 자존감이 충분한지를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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