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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 한 조각

집단지성

아리마대 사람 2024. 11. 18. 21:38

어느새부터인지... 아마 정보화시대라는 말과 더불어서 나타난 경향인 것 같은데...  "집단지성"이라는 말이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사전을 찾아보면 집단지성은 '다수의 개체들의 협력 또는 협업을 통하여 얻게 된 집단적 능력'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유사한 말로서는 집단지능, 협업지성, 공생적 지능 등이 있다고 한다.
특히 최근의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기술의 발달에 따른 빅데이터 기술은 집단 지성을 '대규모의 정보 수집과 처리'라는 관점으로 정의하여 각 개인으로부터 획득한 데이터를 프로세싱하여 집단지성을 창출하기도 한다.
집단지성의 개념은 1910년 미국의 곤충학자 윌리엄 모턴 휠러가 《개미: 그들의 구조·발달·행동》이라는 책에서 처음으로 제시하였다고 한다. 개체로서는 미미한 개미가 공동체로서 협업하여 거대한 개미집을 만들어내는 것으로부터 개미는 개체로서는 미미하지만 군집으로서는 높은 지능체계를 형성한다고 설명한 것이다.
이 밖에도 집단지성 이라는 개념의 효용을 보여주는 많은 예시들이 있다.
요즘은 기업에서도 이러한 개념을 강조하고 있다.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기업의 생존의지가 직원들에게 아이디어를 내고 이를 모아서 새로운 발상,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내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심지어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을 때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온다고 주장하며 성소수자를 의무적으로 채용하는 기업이 있을 정도이다. 소위 '다양성, 평등, 포용' 사상이 이러한 엉뚱한 생존전략과 결합하여 그릇된 풍조를 퍼뜨리기도 한다.
직장생활에서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된 재미있는 사실은 아이디어를 내더라도 이를 수용할 자세가 되어있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아이디어를 평가하는 사람들이 어떻게든 아이디어를 실현해보려는 자세보다 아이디어가 기존의 규범에 맞는지 아닌지를 습관처럼 판단하기 때문에 아이디어를 내더라도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기본적인 인식부족, 또한 필요성과 당위성을 갖추지 못한 채 유행을 따라 흉내내기에 급급한 까닭이다.
 
집단지성의 개념에 이렇게 부정적인 태도를 갖게 되는 것은 직장생활에서의 경험이나 이해하기 힘든 풍조에서 비롯된 결과이기도 하지만...
집단지성이라는 개념의 기초와 그 사례들 가운데에 바람직하지 않은 면이 많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역사상 최악의 집단지성의 사례는 아마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사건일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집단은 빌라도가 전례에 따라 예수님을 풀어주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바라바를 풀어달라고 주장했고, 이로 인해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되셨다.
 
(마가복음 15:6-15)
6 명절이 되면 백성들이 요구하는 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니
7 민란을 꾸미고 그 민란중에 살인하고 체포된 자 중에 바라바라 하는 자가 있는지라
8 무리가 나아가서 전례대로 하여 주기를 요구한대
9 빌라도가 대답하여 이르되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10 이는 그가 대제사장들이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러라
11 그러나 대제사장들이 무리를 충동하여 도리어 바라바를 놓아 달라 하게 하니
12 빌라도가 또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이를 내가 어떻게 하랴
13 그들이 다시 소리 지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14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하니 더욱 소리 지르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15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이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집단이 항상 지성적이고, 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집단으로서의 다수가 우위를 점할 때, 이 숫적 우세는 권력이 되고, 이러한 권력에 과시욕이 더해지면 권력은 반대의견을 묵살하게 되며, 따라서 외곬수가 되어버릴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만일 집단이 교활한 누군가에 의해 교묘하게 가스라이팅을 당해서 편견이나 선입견에 갇하게 된다면, 그 다음에는 어리석음으로 눈과 귀를 막은 채 마구 양팔을 휘젓는 끔찍한 전체주의가 되고 말 것이다.
따라서 이런 위험에 빠지지 않으려면 개인이 모인 집단은 집단을 구성하는 개인의 자유롭고 안전한 의견교환을 반드시, 절대적으로 보장해야만 한다. 그리고 각 개인은 편견이나 선입견없이 남의 의견을 경청해야 하고, 나와 다른 의견을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이런 전제조건 뒤에 드러나지 않게 숨어있는 중요한 요소가 있는데, 그것은 개인들의 의견을 모아서 결론을 도출하고, 결정을 내리는 역할이다. 이 일을 누가 맡을 것인가가 실제로 매우 중요하다.
빅데이터 기술은 데이터 프로세싱 기술을 통해 이를 기계적으로 처리하지만, 만일 이러한 기술적인 부분에 누군가가 인위적인 조작을 한다던가 혹은 이 일을 맡은 특정 인원들이 그릇된 방향으로 몰고간다면... 대제사장들의 충동에 의해 바라바를 풀어주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하라고 외친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집단지성의 바탕에는 인간 집단의 힘을 신뢰하는 사상이 자리잡고 있다. 사람들이 모여서 지혜를 짜내면 반드시 위대한 일을 할 수 있고, 올바른 방향을 찾아갈 수 있다는 인본주의 사상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창세기에 기록된 바벨탑 사건은 이러한 사상의 시작과 끝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창세기 11:1-9)
1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2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3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4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5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
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7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8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9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이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집단을 이룬 인간은 교만해지기 쉽다. 직장생활을 통해서 느끼는 것은 사람들이 모였을 때, 분명히 시너지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1과 1을 모아서 조직을 만들고 체계를 갖추면 2 이상의 효과가 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3 혹은 4 혹은 그 이상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조직을 만들고 체계를 갖추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심지어 꼭대기가 하늘에 닿는 탑을 만들어 스스로의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결국 그로 인해 온 땅의 언어가 혼잡해졌고, 수 천년이 지난 지금 삼성 갤럭시 핸드폰의 AI 통역 기능이 유용하다면서 환호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사람은 훌륭한 존재이다. 현재의 문명을 보더라도... 아니, 쉽게 말해서 가전제품 대리점만 들러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사람은 훌륭한 피조물일 뿐이다. 사람을 창조하신 높고 위대하시고 광대하신 창조주가 계신다.
사람은 더 훌륭한 일을 해보겠다고 함께 모여 집단을 이루고 머리를 맞대어 집단지성을 얻고자 하지만...
그러나 이 모든 행위를 지켜보시는 창조주가 계시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태산은 높지만... 하늘 아래의 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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