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속에 잠깐 스쳐가는 말씀 한 조각

말씀 한 조각 만으로도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 생각 한 조각

어떻게 기도할까

아리마대 사람 2016. 12. 11. 00:52

회사 신우회 모임에서는 매주 목요일마다 중보기도모임을 갖는다.

먼저는 나라를 위해, 회사를 위해, 신우회를 위한 기도를 하고, 이후에는 각자가 가진 기도제목을 나누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다.

각자의 기도제목은 여러가지이다.

믿지 않는 부모님이나 형제, 자매 또는 배우자를 위한 기도, 가족의 건강을 위한 기도, 이웃집 아이의 불치병을 위한 기도, 같은 교회를 다니는 집사님의 수술과 회복을 위한 기도, 아이의 중간고사를 위한 기도, 여행을 떠난 가족을 위한 기도, 아이가 핸드폰 게임을 그만 하기를 바라는 기도, 미래의 배우자를 위한 기도, 동남아 어느 국가의 선교사님을 위한 기도...

각자의 삶의 형편과 처지가 다른 것 못지않게 기도제목도 여러가지이다.

지난주 중보기도모임을 마치고 나오는데, 누군가가 말했다.

"이 모임에 나와서 기도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래도 신앙생활을 잘하는 사람들일텐데, 기도제목을 보면 실망스럽다."

그 말에 대한 대답으로서 가장 먼저 떠오른 말씀은 그러한 생각의 태도에 관한 말씀이었다.

 

(빌립보서 2:1-4)

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2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4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빌립보서의 말씀에 근거하자면, "그런 태도를 버리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다른 사람의 기도제목에 대해 왈가왈부 말하면서 판단하지 말고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해주라"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이 말씀을 따르자면 나 또한 그런 말을 할 위치나 입장이 아님이 명백하기에 더 이상의 대화를 이어가지는 못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전철 안...

생각의 수면 위로 물음이 떠올랐다.

...과연 기도제목은 어떠해야 하는가?...

...과연 어떠한 기도가 올바른 기도인가?...

그래서, 성경에 나온 기도의 사례들을 생각해 보았다.

 

(창세기 21:14-19)

14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가져다가 하갈의 어깨에 메워 주고 그 아이를 데리고 가게 하니 하갈이 나가서 브엘세바 광야에서 방황하더니

15 가죽부대의 물이 떨어진지라 그 자식을 관목덤불 아래에 두고

16 이르되 아이가 죽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 하고 화살 한 바탕 거리 떨어져 마주 앉아 바라보며 소리 내어 우니

17 하나님이 그 어린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으므로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하갈을 불러 이르시되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아브라함이 사람의 생각과 방법으로 낳은 아들 이스마엘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아들 이삭을 놀리는 광경을 본 사라의 주장에 따라 아브라함은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게 되었다. 광야를 방황하다가 죽게 된 하갈과 이스마엘은 자신들의 처지를 한탄하며 크게 울었다. 이 울음은 기도를 대신한 울음으로 이해할 수 있을텐데, 하나님께서는 그 울음소리를 들으시고 하갈과 이스마엘을 살려주셨다.

마음의 탄식과 근심으로 인해 기도를 잊고 소리내어 우는 모습은... 우리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민수기 21:6-8)

6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7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말하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광야길을 멀리 돌아 걷게 되자 불만이 가득하게 되어 먹을 것에 대해 불평의 말들을 쏟아놓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뱀에 물려 죽게 되자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하며 살려달라는 기도를 해달라고 모세에게 부탁했다.

죽게 되자 살려달라는 기도를 부탁하는 모습은... 우리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사무엘상 1:4-11)

4 엘가나가 제사를 드리는 날에는 제물의 분깃을 그의 아내 브닌나와 그의 모든 자녀에게 주고

5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니 이는 그를 사랑함이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니

6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므로 그의 적수인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분하게 하여 괴롭게 하더라

7 매년 한나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남편이 그같이 하매 브닌나가 그를 격분시키므로 그가 울고 먹지 아니하니

8 그의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한나여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냐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 하니라

9 그들이 실로에서 먹고 마신 후에 한나가 일어나니 그 때에 제사장 엘리는 여호와의 전 문설주 곁 의자에 앉아 있었더라

10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11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그 유명한 한나의 기도. 남편의 사랑을 듬뿍 받았으나 자녀를 낳지 못해 남편의 또다른 아내가 화를 돋울 때마다 밥도 먹지 않고 울었던 한나는 성전에서 통곡하며 기도했으며 서원까지 하였다.

자식문제를 비롯한 인생의 문제로 인하여 울면서 기도하고, 서원까지 하는 모습은... 우리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열왕기하 20:1-3)

1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매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그에게 나아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집을 정리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2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3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더라

 

그 유명한 히스기야왕의 기도. 병들어 죽게 되자 왕의 신분이지만 낯을 벽으로 향하는 겸손한 모습으로 통곡하며 기도하는 모습은... 우리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성경에 나오는 기도의 모습들, 그 유명한 한나의 기도, 그 유명한 히스기야왕의 기도를 보아도 특별한 점은 찾기 어렵다. 걱정, 근심, 염려가 있을 때 기도하는 모습, 간절한 소원이 있을 때 서원까지 하며 기도하는 모습, 하나님을 잘 몰라서, 또는 마음이 크게 상하여 미처 기도하지 못하고 울기만 하는 모습... 성경의 사람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사람에 불과했기 때문인지 근심이나 어려움을 만났을 때 하나님을 찾는 모습을 보여줄 뿐이고, 이러한 모습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이러한 모습들로부터는 어리석은 우리들이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를 깨닫지 못할 것이 너무도 명백하기 때문인지, 예수님께서는 친히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모법답안을 알려주셨다.

 

(마태복음 6:9-13)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1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이 모법답안, "주 기도문"은 실상 그 앞에서 말씀하신 기도의 태도에 대한 답안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주 기도문"의 앞에 있는 말씀을 보면 "주 기도문"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마태복음 6:5-8)

5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7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8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단순무식한 생각을 바탕으로 앞뒤를 살펴보니,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하지 말라', '골방에 들어가 은밀하게 기도하라', '중언부언하지 말라'는 기도의 태도에 대한 가르침의 실천방안으로서 알려주신 기도, 즉, '남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 기도', '은밀하게 드리는 기도', '중언부언하지 않는 기도'의 모범답안이 "주 기도문"인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주 기도문"이 나와있는 마태복음 6장에서 믿음의 태도, 즉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일러주셨는데, 우리가 구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 즉, 우리가 기도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셨다. 

 

(마태복음 6:31-33)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우리가 흔히 기도하는 것, 어쩌면 우리가 드리는 기도의 전부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에 관한 것이다.

"아니다, 내 기도에는 하나님께 대한 경배도 포함되어 있다"라고 반박할런지도 모르겠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그저 입으로만 드리는 경배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경우,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시작하는 것은 오랜 교회생할에서 입에 밴 스테레오타입인 경우가 많고, 특별히, 교회생활을 통해 입에 밴 주기도문의 영향을 받은 경우가 많고, 또는 무언가를 부탁하는 입장에서 하나님께 먼저 두손을 모으고 눈치를 보며, 우선적으로, 잠깐동안 납작 엎드리는 것일 수도 있다.

아무튼, 하나님을 부른 후에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에 관한 걱정과 염려를 하나님께 쏟아 놓는다. 지금은 2000년 전쯤 예수님께서 "주 기도문"을 가르쳐 주실 때보다 더 다양한 요구사항을 하나님께 요청하고 있으며, 물질만능주의 시대인 만큼 물질에 관한 다양한 요구사항을 하나님께 요청하고 있다. 물론, 이런 다양성은 표면적인 것일 뿐, 인간의 요청사항은 결국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에 지나지 않는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본체이시며, 심지어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 사람의 본성에 관해 너무도 잘 알고 계셨다. 그래서, 참으로 다정하고 친절하게 "너희에게 필요한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다 알고 계신단다"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 우리가 할 일은 그런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kingdom)와 하나님의 의(righteousness)를 구하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셨다. 이것을 구하면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 등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신다고 말씀하셨다.

이것을 알려주신 예수님께서는 몸소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본을 보여 주셨다.

 

(마태복음 26:36-39)

36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37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38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예수님께서는 완전한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이셨다. 그리고, 사람의 삶을 사셨다. 그런데, 그 삶은 화려하고 부유한 삶이 아니라 가난하고 힘겨운 삶이었다. 몇가지 성장배경만 보아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는 삶이다.

 

- 로마의 식민지였던 이스라엘 땅: 제국주의 일본의 식민지였던 우리나라의 백성들의 삶을 생각해보자. 제국주의 로마의 식민지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을 짐작할 수 있다.

- 갈릴리 나사렛 동네: 갈릴리 호수 주변은 어촌이 많았을 것이고, 그 중에서도 나사렛 동네에 대해서는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요한복음 1:46)"는 말로 형편과 사정을 짐작할 수 있다. 예수님은 평생동안 나사렛 사람, 나사렛 예수로 불리셨다. 나사렛 사람에 불과하다는 의미로 쓰였거나, 나사렛에서 이런 분이 나왔다는 놀람의 의미로 쓰였을 것이다.

- 목수의 아들: 목수였던 요셉 가정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예수님 또한 목수의 일을 하셨다. 요셉의 가정, 또는 목수라는 직업에 대한 당시 주변사람들의 인식은 말씀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이 다 그를 증언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을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누가복음 4:22)"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어머니는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마태복음 13:55)"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마가복음 6:3)"

 

이렇듯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삶을 사셨다.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지극히 평범하고 힘겨운 처지의 삶을 사셨다. 이런 환경 뿐만 아니라 감정의 측면에서도 지극히 평범한 사람으로서 사셨다.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 땅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명을 마치시기 전, 그동안 살아오신 사람으로서의 삶이 고통의 클라이막스에 도달한 그 때, 예수님께서는 몸소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본을 보여 주셨다.

로마제국에서 흉악범을 처형할 때 사용했던 십자가 형틀을 앞에 두고, 완전히 사람이셨던 예수님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하게 되는 기도를 하셨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손과 발에 못이 박힌 채로 나무에 매달려 온 몸의 피를 다 쏟고 죽을 것을 알고도 견딜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람이라면 이 기도를 붙들고 울었을 것이고, 체면이고 뭐고 다 버리고 하나님께 매달려 떼를 썼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이라면 절대 놓지 않을 그 기도를 놓아버리고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기도를 하셨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이 기도를 하시는 순간...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범죄함으로 이 세상에 죄가 들어오고 사람들은 숙명적으로 죽을 수 밖에 없게 된 때에, 세상의 모든 땅과 세상의 모든 시간을 살아가는 인간의 구속을 계획하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고,

죄 가운데 태어나 죄 가운데 살다가 죽음으로 갈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이 하나님의 나라로 돌이켜짐으로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이 심겨져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졌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 떳떳하고 당당하게 인간을 구원하시게 됨으로써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지게 된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드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이루셨다.

 

(창세기 21:12-13)

12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

13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

 

아브라함이 사라의 여종 하갈을 통해 얻은 아들 이스마엘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기적으로 얻은 아들 이삭과 대비되어 사람의 생각과 방법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마엘에 대해서 이미 아브라함과 맺으신 약속이 있었다.

 

(창세기 21:17-19)

17 하나님이 그 어린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으므로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하갈을 불러 이르시되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18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가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시니라

19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셨으므로 샘물을 보고 가서 가죽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그 아이에게 마시게 하였더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맺은 약속, 즉 이스마엘로 하여금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는 약속을 따라 하갈과 이스마엘을 살려주셨다. 하갈과 이스마엘은 기도가 아닌, 마음의 탄식과 근심으로 인해 그저 통곡하는 모습일 뿐이었으나, 그들의 생명은 이미 아브라함과 약속을 맺으신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우리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으나, 그 뒤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다.

 

(민수기 21:9)

9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불평불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보내신 불뱀에 물려 죽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하심에 따라 모세가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단 놋뱀을 쳐다보고 살게 되었다. 불뱀에 물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죽었으나, 불뱀에 물린 사람들이 사는 방법은 그저 장대 위의 놋뱀을 쳐다보기만 하는 것이었다. 그저 장대 위의 놋뱀을 쳐다보기만 하면 살게 되는 모습은 곧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역사, 즉 그저 십자가 위의 예수를 믿기만 하면 살게 되는 역사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우리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으나, 이것은 하나님의 구속의 섭리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사무엘상 1:19-28)

19 그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경배하고 돌아가 라마의 자기 집에 이르니라 엘가나가 그의 아내 한나와 동침하매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

20 한나가 임신하고 때가 이르매 아들을 낳아 사무엘이라 이름하였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함이더라

21 그 사람 엘가나와 그의 온 집이 여호와께 매년제와 서원제를 드리러 올라갈 때에

22 오직 한나는 올라가지 아니하고 그의 남편에게 이르되 아이를 젖 떼거든 내가 그를 데리고 가서 여호와 앞에 뵙게 하고 거기에 영원히 있게 하리이다 하니

23 그의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그대의 소견에 좋은 대로 하여 그를 젖 떼기까지 기다리라 오직 여호와께서 그의 말씀대로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이에 그 여자가 그의 아들을 양육하며 그가 젖 떼기까지 기다리다가

24 젖을 뗀 후에 그를 데리고 올라갈새 수소 세 마리와 밀가루 한 에바와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가지고 실로 여호와의 집에 나아갔는데 아이가 어리더라

25 그들이 수소를 잡고 아이를 데리고 엘리에게 가서

26 한나가 이르되 내 주여 당신의 사심으로 맹세하나이다 나는 여기서 내 주 당신 곁에 서서 여호와께 기도하던 여자라

27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내가 구하여 기도한 바를 여호와께서 내게 허락하신지라

28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하고 그가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너무나 아들을 원하여 성전에서 통곡하며 기도하고 서원까지 하는 한나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한나의 기도를 본 제사장 엘리는 한나를 축복했으며, 믿음의 여인 한나는 이후로부터 잘 먹고 다시는 얼굴에 근심의 빛을 띄우지 않았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한나를 돌아보시고 아들을 주셨다. 믿음의 어머니인 한나는 사원대로 이 귀한 아들의 평생을 하나님께 드렸다. 그리고, 아이는 성전에서 자라게 되었다.

 

(사무엘상 2:35)
35 내가 나를 위하여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키리니 그 사람은 내 마음, 내 뜻대로 행할 것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리니 그가 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영구히 행하리라


(사무엘상 3:19-20)

19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20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의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을 알았더라

 

(사무엘상 7:12-17)

12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13 이에 블레셋 사람들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지역 안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

14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았던 성읍이 에그론부터 가드까지 이스라엘에게 회복되니 이스라엘이 그 사방 지역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도로 찾았고 또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 평화가 있었더라

15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되

16 해마다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로 순회하여 그 모든 곳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렸고
17 라마로 돌아왔으니 이는 거기에 자기 집이 있음이니라 거기서도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며 또 거기에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이 아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던 시대에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으며,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였고, 사울과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운 하나님의 종 사무엘이다. 아들이 없어서 남편의 또다른 아내로부터 놀림을 받던 한나가 하나님께 아들을 구하여 드렸던 기도. 겉으로 보기에는 우리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으나, 이것은 하나님의 위대한 종을 일으킨 역사적인 기도였다.

 

(열왕기하 20:4-6)

4 이사야가 성읍 가운데까지도 이르기 전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5 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겠고

6 내가 네 날에 십오 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셨더라

 

병들어 죽게 되자 겸손한 모습으로 통곡하며 기도한 히스기야 왕에게 하나님은 3일만에 성전에 올라갈 수 있도록 병을 낫게 해 주셨고 15년을 더 살게 해 주셨으며 앗수르로부터 보호해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그 징표로서 해시계의 해 그림자가 뒤로 10도를 물러가는, 즉 지구의 자전이 반대방향으로 움직이는 징표를 주셨다.  

 

(열왕기하 18:3-6)
3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4 그가 여러 산당들을 제거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5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6 곧 그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그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히스기야왕이 하나님께 놀라운 징조와 복을 받은 것은 그가 다윗과 같이 하나님께 정직하게 행하며 우상을 없애고 하나님을 의지하였기 때문이었다. 병들어 죽게 되어 통곡하며 기도하는 히스기야왕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으나,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경외하고 의지하는 지도자에게 얼마나 복을 주시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이다. 

 

성경에 나오는 기도의 모습들을 보아도 특별한 점은 찾기 어렵다. 성경의 사람들도 기도의 모습, 그 자체로서는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들의 기도의 앞과 뒤를 살펴보면 기도의 응답이 하나님의 역사하심의 한 가운데에 있었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심으로 성경을 이루어 가셨음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예수님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대로 하시라고 기도한 예수님의 기도와 맣닺아 있다.

성경의 사람들은 명확히 몰랐고, 예수님께서는 명확히 아셨다는 점만 다를 뿐이다.

그들의 기도가 하나님의 뜻 안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갔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분명하게 알려주신 것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것이다.

이상의 생각들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한가지의 결론은 먼저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뜻 안에 있기를,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가기를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결혼한 여자로서 아들이 없다는 점이 못내 아쉬워 아들을 구하더라도, 한 사람은 그 아들을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훌륭하게 하나님의 일을 하는 하나님의 종을 키울 수도 있고, 또 다른 사람은 귀하게 얻은 아들이라며 애지중지 하다가 잘못 키워 훗날 내가 왜 저 아들을 달라고 기도했는가를 후회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 한다. 우리는 먼저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뜻 안에 있기를,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가기를 구해야 한다.

그러니까, 쉽게 생각하면, 기도를 할 때 가장 먼저 할 일은 '내 기도가 하나님의 원하시는 바가 되기를 기도하는 것'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