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가복음 3장 ************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치시며 귀신을 쫓아내시고 큰 무리의 사람들이 따르는 가운데 12명의 제자들을 세우셨다. 바리새인, 서기관들과의 갈등이 고조된다.
1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Another time he went into the synagogue, and a man with a shriveled hand was there.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본문은 '그리고'에 해당하는 접속사 '카이'로 시작된다. 이는 본 단락의 내용이 앞 단락과 이어짐을 보여준다. 본 단락(1-6절)은 앞 단락(2:23-28)과 동일하게 안식일에 일어난 일이며, 안식일의 의미에 관한 교훈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접속사의 사용을 통해서 앞 단락과는 별개의 사건을 다루고 있음을 나타낸다. 앞 단락은 밀밭에서 있었던 일이고, 본 단락은 회당에서 있었던 별개의 사건이다. 또한 본 단락의 안식일과 앞 단락의 안식일은 서로 다른 날이었다.
(누가복음 6:1)
1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새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으니
(누가복음 6:6)
6 또 다른 안식일에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사 가르치실새 거기 오른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예수님께서 "회당"에 에 들어가신 이유는 그날이 회당에서 모임을 갖는 안식일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예수님께서 들어가신 회당이 어느 회당인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으나 "다시"에 해당하는 '팔린'이 사용된 것으로 보아 아마 이전에 들어가신 바 있는 회당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팔린’은 마가가 자주 사용하는 표현으로서 예수님께서 회당에 출입하시는 일이 처음이 아니고 일상적이었음을 보여준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으로서 이 땅에서 사셨음을 의미하며, 또한 초기 사역 때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희당을 복음 전도의 장소로 자주 이용하셨다고 생각할 수 있다.
(마가복음 1:21)
21 그들이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마가복음 1:39)
39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그들의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쫓으시더라
(마가복음 6:2)
2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 이 사람이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냐
초대 교회 시대의 사도들도 이를 따라 행했다.
(사도행전 9:20)
20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사도행전 13:5)
5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
(사도행전 13:14)
14 그들은 버가에서 더 나아가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으니라
(사도행전 14:1)
1 이에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함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말하니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
(사도행전 17:10)
10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그들이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
(사도행전 18:4)
4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사도행전 18:19)
19 에베소에 와서 그들을 거기 머물게 하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니
(사도행전 19:8)
8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한쪽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손"에 해당하는 '케이라'의 원형 '케이르'는 신체의 한 부분으로서 손뿐만 아니라 팔이나 손가락 등도 가리키므로 "손 마른 사람"의 병이 구체적으로 어떤 상태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마른"에 해당하는 '엑세람메넨'의 원형 '엑세라이노'는 '(물이) 마르다', '(식물이) 시들다'라는 의미이며, 비유적으로 신체의 일부가 굳어지는 상태를 나타낸다. 이 단어는 9:18에서는 말 못하게 귀신 들린 아이에 대해 '파리해지다'라는 의미로 번역되기도 했다.
(마가복음 9:18)
18 귀신이 어디서든지 그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지는지라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이와 같은 의미를 통해 "손 마른 사람"은 사고나 중풍 등의 질병으로 인해 손이나 팔을 사용하지 못하는 상태였음을 알 수 있다. 누가복음 6:6을 참고하면 이 사람은 오른손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였다.
(누가복음 6:6)
6 또 다른 안식일에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사 가르치실새 거기 오른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누가는 의사였으므로 보다 상세하게 기록한 것으로 생각된다.
2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주시하고 있거늘
Some of them were looking for a reason to accuse Jesus, so they watched him closely to see if he would heal him on the Sabbath.
사람들이 예수를 송사하려 하여
"사람들이"에 해당하는 별도의 단어가 원문에는 나타나 있지 않으나, 사용된 동사가 3인칭 복수형이므로 '그들이', '사람들이'의 의미로 번역할 수 있다. 여기서 "사람들"은 6절을 참고할 때 바리새인들을 가리킨다.
안식일에
2장 후반부에 기록된 앞 단락은 안식일의 의미에 관한 교훈, 즉 다윗이 시장했을 때 제사장들만 먹을 수 있는 진설병을 먹은 것처럼 사람을 위해서 만들어진 안식일의 율법이 사람이 당한 위급한 상황보다 선행될 수 없다는 의미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리고 여기서도 안식일에 일어난 사건과 이 사건을 통한 가르침이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구성은 마가가 사건을 기록함에 있어서 연대기적으로 배열하기보다는 주제별로 모아서 기록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엿보거늘
"엿보거늘"에 해당하는 '파레테룬'의 원형인 '파라테레오'는 '곁에서' 또는 '옆에서'라는 뜻을 갖는 '파라'와 '주시하다'라는 뜻을 갖는 '테레오'가 결합된 단어이며, '면밀하게 지켜보다', '몰래 살피다', '보초를 세워 지키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종교적인 문맥에서는 '신중한 태도로 준수하다'라는 의미도 갖는다. 이러한 의미를 바탕으로 생각할 때, 이들은 우연히 예수님을 회당에서 만난 것이 아니며, 앞 단락에서 자신들이 따르는 규례를 무시하고 예수님 자신이 새롭게 가르쳐 주신 안식일의 의미와 관련하여 예수님을 정죄하기 위한 구체적인 증거를 잡기 위해 예수님을 감시하며 행동을 주시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이 동사가 행동의 반복이나 계속을 보여 주는 미완료의 시제로 기록된 점을 보면, 예수님을 궁지에 빠뜨리기 위해 바리새인들이 지속적으로 감시했음을 알 수 있다.
3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 가운데에 일어서라 하시고
Jesus said to the man with the shriveled hand, "Stand up in front of everyone."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 가운데에 일어서라 하시고
"한 가운데에 일어서라"에 해당하는 원문에는 장소의 이동 방향을 나타내는 전치사 '에이스'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이 말은 '일어나서 가운데로 가라' 또는 '한 가운데로 가서 서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송사하기 위한 죄목을 찾기 위해 엿보고 있었지만, 이를 모두 알고 계신 예수님은 오히려 위축되지 않으시고 당당하게 손 마른 사람을 사람들이 잘 볼 수 있는 곳에 세우셨다. 이는 명확하게 가르침을 주시기 위한 목적이기도 했을 것이다.
4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Then Jesus asked them, "Which is lawful on the Sabbath: to do good or to do evil, to save life or to kill?" But they remained silent.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에 해당하는 부정사 '소사이'의 원형 '소조'는 '목숨을 건지다', '질병과 고통으로부터 구원하다', '심판으로부터 구원하다' 등의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으며, 이는 육체의 생명 뿐 아니라 영혼의 구원까지 포함하는 포괄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유대인의 율법 연구를 집대성한 '할리카'의 해석에 따르면 안식일에 생명을 구하는 일은 반율법적 행위가 아니며, 안식일에 손 마른 자를 고치신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지만, 바리새인들은 생명이 위급한 경우에만 치료 행위를 해야 한다는 매우 인위적인 규정을 세워 놓았다. 따라서 그들의 입장에서는 손 마른 자의 병이 당장 고치지 않으면 안 될 중요한 병이 아니므로 굳이 안식일에 고쳐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은 바리새인들의 율법 해석의 불완전성을 지적하시고 완성된 해석을 선포하신 것이었다. 앞 단락의 2:27에서 가르쳐 주신 바에 따르면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며, 본 단락에서 가르쳐 주고 계신 바에 따르면 안식일에는 선을 행하고 생명을 구하는 것이 옳은 일이다. 즉, 안식일은 사람의 생명을 구하고 피조물을 타락 이전의 상태로 회복시키는 것이 목적인 것이다.
(마가복음 2:27)
27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예수님의 이 질문은 마태복음에서는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라는 가르침으로 나타나며, 이는 바리새인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서 말씀하신 것으로 나타난다.
(마태복음 12:10-12)
10 한쪽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물어 이르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1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
12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바리새인들은 지속적으로 예수님을 율법을 어긴 자로 고발하고자 했다(2절). 마태복음에서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율법을 어겼다고 고발하기 위해 함정을 파고 질문을 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마가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이미 모든 것을 아시고 먼저 질문을 하신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이 잠잠하거늘
'잠잠하거늘'에 해당하는 '에시오폰'의 원형 '시오파오'는 '침묵하다', '조용해지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으며, 비유적으로 사용되는 경우에는 '비바람이 잔잔해지다'라는 의미도 갖는다. 누가복음 1:20에서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가 성전에서 천사 가브리을 만난 후에 말을 할 수 없게 된 경우에도 이 단어가 사용되었다.
(누가복음 1:20)
20 보라 이 일이 되는 날까지 네가 말 못하는 자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이는 네가 내 말을 믿지 아니함이거니와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
예수님을 고발하려던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질문에 대해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 것은 할 말이 있는데도 안 한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권위와 가르침에 눌려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상태였음을 보여 준다. "잠잠하거늘"은 미완료형으로서 그들이 계속적으로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고 잠잠했음을 나타낸다.
5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 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He looked around at them in anger and, deeply distressed at their stubborn hearts, said to the man, "Stretch out your hand." He stretched it out, and his hand was completely restored.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 보시고
"탄식하사"에 해당하는 '쉴뤄푸메노스'의 원형 '쉴뤄페오'는 한글 개역 성경의 ‘근심하 사’라는 번역으로는 원어의 의미가 제대로 살아나지 못한다. 이 단어는 *함께’라는 뜻의 ‘쉰 (aw)’과 •슬퍼하다’, ‘괴로워하다’라는 뜻의 ‘뤼페오가 결합되어 어떤 사람으로 인하여 또는 그와 함께 ‘깊이 슬퍼하다 또는 고뇌하다’ 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예수께서 자신들을 구원하 러 온 하나님의 아들이자 그리스도인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며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을 뿐만 아니 라 오히려 율법에 대한 편협한 해석에 연연하여 그를 감히 판단하고 정죄하려는 바리새인 무리들 에 대해서 한편으로는 공의로운 신적 분노를 품으시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들의 어리석음을 깊은 연 민의 눈으로 바라보고 계심을 잘 표현해 주는 말이다.
"노하심"에 해당하는 '오르게스'의 원형 '오르게'가 사람에게 적용되면 일반적으로 '화', '분노', '분개' 등의 감정을 나타내며, 이런 식의 감정 표출은 대개 부정적으로 언급된다.
(야고보서 1:20).
20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그러나 본문과 같이 악에 대한 신적 반응으로서 언급되면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과 형벌이라는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로마서 1:18)
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또한 이 분노는 마지막 심판의 때에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자들에게 쌓였다가 부어지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진노'를 나타낼 때도 사용되었다.
(로마서 2:5)
5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요한계시록 6:17)
17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요한계시록 11:18)
18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내려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작은 자든지 큰 자든지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
예수님의 노하심 역시 공의의 분노이다. 이는 바리새인들이 자신을 고발하고 죽이려는 음모를 꾸미려는 사실 때문이 아니고 그들이 부인할 수 없는 진리의 말씀, 여기서는 특별히 안식일에 관한 말씀을 듣고도 완악함을 버리지 않고 이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한편 본문의 내용은 마 12:13이나 눅 6:10 등의 병행 구절에는 없는 내용이다. 마가는 본문에 서 뿐만 아니라 본서 전체에서 다른 복음서 기자들에 비해 예수의 감정 상태에 대해 훨씬 더 자세 하게 설명하였다(1:41 ; 10: 14). 마가는 이러한 표현을 통해 예수는 신성 뿐 아니라 인성도 동시 에 지니신 분이심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6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니라
Then the Pharisees went out and began to plot with the Herodians how they might kill Jesus.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니라
"곧" 이 표현은 베드로의 급한 성격을 드러내는 동시에 설교를 듣는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힘이 있는 말이다. (실제로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의논했을 수도 있지만)
7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바다로 물러가시니 갈릴리에서 큰 무리가 따르며
Jesus withdrew with his disciples to the lake, and a large crowd from Galilee followed.
8 유대와 예루살렘과 이두매와 요단 강 건너편과 또 두로와 시돈 근처에서 많은 무리가 그가 하신 큰 일을 듣고 나아오는지라
When they heard all he was doing, many people came to him from Judea, Jerusalem, Idumea, and the regions across the Jordan and around Tyre and Sidon.
9 예수께서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작은 배를 대기하도록 제자들에게 명하셨으니
Because of the crowd he told his disciples to have a small boat ready for him, to keep the people from crowding him.
10 이는 많은 사람을 고치셨으므로 병으로 고생하는 자들이 예수를 만지고자 하여 몰려왔음이더라
For he had healed many, so that those with diseases were pushing forward to touch him.
11 더러운 귀신들도 어느 때든지 예수를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하니
Whenever the evil spirits saw him, they fell down before him and cried out, "You are the Son of God."
귀신들은 예수님께서 누구신지, 어떤 권세를 갖고 계신지를 알고 있었다. 예수님께서 오심은 귀신들에게 심각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마가복음 1:24)
24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12 예수께서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고 많이 경고하시니라
But he gave them strict orders not to tell who he was.
예수님께서는 귀신들이 예수님이 누구신지, 어떤 권세를 갖고 계신지를 말하도록 허락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귀신을 내어 쫓으시며, 귀신들이 말하는 것도 허락하지 않으시는 권세, 곧 하나님의 아들의 위엄과 권세를 지니고 계셨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 맡겨진 구원의 사역, 곧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구원의 사역을 완성하기 위한 시기까지 (대략 2년반의 기간) 자신이 누구인지를 말하지 못하도록 금하셨다.
예수님이 누구이신가, 그리고 사람들이 예수님이 누구이신가를 알게 되는 것은 예수님의 사역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으며, 예수님의 때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13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Jesus went up on a mountainside and called to him those he wanted, and they came to him.
14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He appointed twelve--designating them apostles--that they might be with him and that he might send them out to preach
15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and to have authority to drive out demons.
16 이 열둘을 세우셨으니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
These are the twelve he appointed: Simon (to whom he gave the name Peter);
17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James son of Zebedee and his brother John (to them he gave the name Boanerges, which means Sons of Thunder);
18 또 안드레와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다대오와 가나나인 시몬이며
Andrew, Philip, Bartholomew, Matthew, Thomas, James son of Alphaeus, Thaddaeus, Simon the Zealot
19 또 가룟 유다니 이는 예수를 판 자더라
and Judas Iscariot, who betrayed him.
20 집에 들어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이므로 식사할 겨를도 없는지라
Then Jesus entered a house, and again a crowd gathered, so that he and his disciples were not even able to eat.
21 예수의 친족들이 듣고 그를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When his family heard about this, they went to take charge of him, for they said, "He is out of his mind."
예수의 친속들이 듣고 붙들러 나오니
여기서 친속들은 31절을 참고할 때, 예수님의 모친과 동생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가족들은 예수님을 미쳤다고 생각했다.
요한복음은 '믿지 않았다' 정도로 기록하고 있지만, 실은 '미쳤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요한복음 7:5)
5 이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22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은 그가 바알세불이 지폈다 하며 또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And the teachers of the law who came down from Jerusalem said, "He is possessed by Beelzebub! By the prince of demons he is driving out demons."
23 예수께서 그들을 불러다가 비유로 말씀하시되 사탄이 어찌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
So Jesus called them and spoke to them in parables: "How can Satan drive out Satan?
24 또 만일 나라가 스스로 분쟁하면 그 나라가 설 수 없고
If a kingdom is divided against itself, that kingdom cannot stand.
25 만일 집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집이 설 수 없고
If a house is divided against itself, that house cannot stand.
26 만일 사탄이 자기를 거슬러 일어나 분쟁하면 설 수 없고 망하느니라
And if Satan opposes himself and is divided, he cannot stand; his end has come.
27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는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세간을 강탈하지 못하리니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
In fact, no one can enter a strong man's house and carry off his possessions unless he first ties up the strong man. Then he can rob his house.
2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모든 모독하는 일은 사하심을 얻되
I tell you the truth, all the sins and blasphemies of men will be forgiven them.
29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 하시니
But whoever blasphemes against the Holy Spirit will never be forgiven; he is guilty of an eternal sin."
30 이는 그들이 말하기를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 함이러라
He said this because they were saying, "He has an evil spirit."
31 그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
Then Jesus' mother and brothers arrived. Standing outside, they sent someone in to call him.
32 무리가 예수를 둘러 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A crowd was sitting around him, and they told him, "Your mother and brothers are outside looking for you."
33 대답하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Who are my mother and my brothers?" he asked.
34 둘러 앉은 자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Then he looked at those seated in a circle around him and said, "Here are my mother and my brothers!
35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Whoever does God's will is my brother and sister and moth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