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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 마가복음

마가복음 1장

아리마대 사람 2017. 1. 21. 00:30

마가복음은 복음서 가운데 가장 먼저 기록되었다.

마가복음을 비롯한 신약성경의 거의 대부분은 먼저 말로써 전해졌고, 그 후에 말을 기록하는 방식으로 저술되었다. 그 때문에 문체는 구어체이고, 내용은 생동적이며 날 것 같고 거친 느낌이 있다. 또한 복음을 있는 그대로 빨리 전하고 싶은 마음이 나타나 있다. 말로써 전해진 내용이기 때문에 문법적으로 정확하지 않은 부분도 많다. 마가복음에 기록된 풍습이나 관례등을 볼 때 이 책은 이방인을 대상으로 기록된 책으로 여겨진다. 

 

마가복음을 기록한 사람은 마가이다.

마가는 바나바, 바나바를 통해서 만난 바울, 로마에서 만난 누가, 그리고 베드로 등 초대교회의 기독교 지도자 네 명의 조력자로 활동했다. 비록 초기 이방 전도의 핵심 인물은 아니었지만, 마가는 예루살렘 교회와 이방 교회들을 서로 연결시켜 주는 중요한 인물로서 활동했다.

 

마가는 바나바의 조카였다.

(골로새서 4:10)
10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또한 바울의 동역자로서 바울에게 유익한 역할을 감당했다.

(디모데후서 4:11)
11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빌레몬서 1:24)
24 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

그리고 누가를 돕기도 했다.

또한 마가는 베드로의 설교를 기록하고 베드로의 통역으로서도 활동하면서 베드로는 마가를 아들로 부를 정도로 친근하게 여기기까지 했던 것 같다.

(베드로전서 5:13)
13 함께 택하심을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

 

마가는 로마식 이름인 '마르쿠스'이고, 유대인으로서 마가의 히브리식 이름은 요한, 곧 '요하난'이었다.

(사도행전 12:12)
12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거기에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

(사도행전 12:25)
25 바나바와 사울이 부조하는 일을 마치고 마가라 하는 요한을 데리고 예루살렘에서 돌아오니라
(사도행전 15:37)
37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마가라는 이름은 로마 사회에는 매우 흔한 이름이었다.

 

마가복음의 경우, 처음에 사람들에 의해 ‘베드로의 복음서’로 불렸는데, 왜냐하면 베드로의 설교를 기록한 책이기 때문이다. 베드로의 설교인 만큼 이 책에는 베드로의 특징들, 베드로의 솔직한 모습들이 담겨있다. 베드로는 자신의 실수와 잘못들을 드러내는 데에 주저하지 않으며, 자신에 대한 예수님의 칭찬은 언급하지 않는다. 또한, 성급하고, 가만히 있지 못하는 베드로의 성격이 잘 드러나 있다. 아울러 제자들의 솔직한 모습들도 담겨있다. 제자들의 어리석음과 믿음이 없음을 드러내는 데에 주저하지 않는다. 이러한 솔직한 모습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교회 공동체가 자리를 잡고 교회 내에서 제자들이 존중받는 지위가 되면서 점차 감추어진다. 다른 복음서에서는 마가복음과 같이 솔직하게 드러나지 않게 된다.

 

마가복음에서는 사건과 상황을 묘사하는 데 있어서 즉시(immediately, straightway, forthwith)라는 의미의 ""이라는 단어가 매우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다. 원문에서는 40번 가량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곧"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이 사용된 까닭은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볼 수 있다.

①베드로의 성격이 성급하기 때문이다.

②예수님께서 매우 바쁘게 일하셨기 때문에 베드로가 이와 같이 표현할 수 밖에 없었다.

"곧"이라는 단어의 사용에 따라 장면과 상황이 생생하고도 극적으로 전달되어 숨도 안쉬고 급하게 말하는 베드로에게 공감하게 되는 특징이 있으며, 쉬지 않고 매우 바쁘게 일하신 예수님에게 감동하게 된다. 또한, "곧"이라는 단어가 대표하듯이 마가복음은 수사학적 기교나 설명, 배경 등에는 관심이 없고 매우 단도직입적이다.

또한, 한국어 번역본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그리고'라는 단어가 매우 빈번하게 사용되어 있다고 한다. 총 16장의 마가복음에서 555회 사용되어 있다고 한다. 이는 예수님의 행동만을 전하기 위한 목적으로 여겨진다.

마가복음에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거의 나타나 있지 않고, 대부분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를 통해서 베드로는 특별히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들, 곧 질병의 치료나 귀신을 내어쫓는 일 등에 관심이 많았음을 의미한다. 이 일들은 하나님의 아들(1:1)만이 하실 수 있는 일들, 곧 기적들이다. 예수님을 증거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직접적인 접근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마가복음은 구성 측면에서 예수님께서 이동하신 장소가 중요하다. 마가복음은 지중해보다 400m 낮은 해발 -400m의 땅으로서 지구에서 지표면이 가장 낮은 요단강에서 시작되어 갈릴리로 옮겨갔다가 이스라엘 땅에서 가장 높은 산인 헐몬산 자락의 가이사랴 빌립보 도상에서 베드로가 신앙고백을 하기까지 2년 반의 시간을 보내고(1장부터 9장까지), 신앙고백을 기점으로 하여 헐몬산으로부터 예루살렘을 향하는 6개월의 기간을 보낸 후(10장), 마침내 십자가와 부활에 도달한다(50일의 기간, 11장부터 16장까지).

마가복음이 예수님의 모든 행적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개략적으로 예수님께서 행하신 길을 파악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지명불특정 장소(회당, 집 등)를 표시해 두었고, 각 장에 나타난 경로를 지도 상에 대략적으로 표시해 두었다.

 

************ 마가복음 1장 ************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신 후 사역을 시작하시고 널리 알려지게 되신다.


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
  The beginning of the gospel about Jesus Christ, the Son of God.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이 책은 마가복음, 곧 마가가 저술한 복음서라고 불리지만, 저자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마가복음의 영향인지 다른 복음서의 저자들도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마가를 비롯한 복음서의 저자들은 자기 자신을 드러내어 주목받기를 원한 것이 아니라 독자들이 예수님에게만 관심을 기울이고 바라보기를 원했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복음서에는 저자를 짐작할 수 있는 작은 흔적들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마가복음의 저자는 자신을 밝히는 대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이심을 선포하며 마가복음을 시작한다. 이것이 마가복음의 주제이고, 마가복음을 기록한 목적이기도 하다. 이는 베드로의 설교를 기반으로 한 기록이므로 베드로의 고백으로부터 시작된 것일 수도 있다.

(마태복음 16:16)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사실은 마가복음에서 너무나 중요하여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다'라는 선언이 처음과 중간과 마지막, 곧 세 번에 걸쳐 등장한다. 이는 중요한 것을 강조하기 위한 방법이다.

맨 처음의 선언은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는 것이다.

(마가복음 1:11)

11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중간의 선언은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난다.

(마가복음 9:7)

7 마침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마지막 선언은 이스라엘을 점령한 국가인 로마의 백부장의 고백으로서, 곧 이방인인 로마의 군대 장교의 입을 통한 소리로서 나타난다. 하늘이 아닌 땅에서 소리가 나는 것이다. 

(마가복음 15:39)

39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숨지심을 보고 이르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이 구절은 본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아르케 투 유앙겔리우 이에수 크리스투 휘우 테우)"이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것이 복음임을 나타낸다.

로마시대 당시에는 황제나 영웅, 뛰어난 예술가 등을 '신의 아들'로 불렀기 때문에 단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만 기록했다면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명확하게 전달하지 못했을 것이다.

시작이라

여기서 '시작'은 헬라어로 '아르케'이며, 이는 요한복음에 기록된 '태초'와 동일한 단어이다. 

(요한복음 1:1)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이는 복음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예수님의 이야기를 마치 창세기와 같이 표현한 것이다.

'시작'의 의미는 마가가 쓴 이 글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이며, 이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는 구성 측면의 선언이며, 또한 마가가 이 글을 기록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이 이후의 역사 동안 전 세계에 널리 전파되기 시작했다는 역사적 측면의 선언이기도 하다.


2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예비하리라
  It is written in Isaiah the prophet: "I will send my messenger ahead of you, who will prepare your way"--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마가복음은 가장 먼저 이사야의 글, 곧 구약을 인용하면서 시작한다.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는 하나님의 종이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고, 자기 백성들의 죄를 위해 죽임을 당하고, 죽음에서 일어나 높여질 것이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이사야의 글은 '제5복음서'라는 별명을 갖고 있기도 하다. 

마태복음은 아브라함으로부터 다윗을 거쳐 이어지는 긴 족보를 통해 예수님이 구약에서 예언된 메시아이심을 밝히고자 했으며, 누가복음은 당시의 글을 쓰는 방식을 따라 복음서의 기록 동기를 밝히고 예수님의 탄생 전부터의 이야기를 상세히 기록하였으며, 요한복음은 헬라의 철학적 용어를 도입하여 예수님의 신적 위상을 높이고 했으나, 마가복음은 그와 같은 특별한 시작 부분없이 세례 요한의 활동으로부터 기록을 시작했다. 굳이 의미를 찾자면, 세례 요한을 언급하는 데에 있어서 이처럼 구약의  이사야를 인용했다는 점이다.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예비하리라

이 말씀은 이사야의 글이라기보다 말라기의 글을 참고해야 할 것이다.

(말라기 3:1)
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이 말씀이 마태복음에 인용됨으로써 이 말씀은 세례 요한이 보냄을 받게 됨을 가리키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이 말씀은 내용상 다음의 3절에 나타난 이사야의 글과 동일하므로 앞에서 이를 뭉뚱그려 '선지자 이사야의 글'이라고 말하였다.

누가복음은 하나님의 사자로서 보냄을 받은 세례 요한이 태중에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고 기록했다.

(누가복음 1:15)
15 이는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또한, 누가복음은 요한이 보냄을 받기까지 준비되는 성장 과정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누가복음 1:80)
80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 들에 있으니라

세례 요한은 자라는 동안 심령이 강하여지고 담대해졌으며, 빈 들에서 지내는 동안 기도를 통해 성령으로 충만해졌을 것고, 이를 통해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는 사자로서의 사명을 행할 준비를 갖추고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나타난 것이다.

 

3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a voice of one calling in the desert, 'Prepare the way for the Lord, make straight paths for him.'"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이사야에 기록된 말씀은 다음과 같다.

(이사야 40:3)
3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요한은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였다.

'광야에서' 외쳤기 때문에 그 어떤 것의 영향도 받지 않았고, 그 어떤 제약으로부터도 자유로웠으며,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았다. 그래서, 4절과 같이 담대하게 '회개의 세례'라는 메세지를 전파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사명을 감당하는 자로서 그는 단지 '소리'였다. 그는 '광야에 외치는 자'가 되기조차도 원하지 않았고, 단지 '소리'에 불과한 '광야에 외치는 소리'였다. 그는 자기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오로지 외치는 소리로서 소리 형태로 전달되는 메세지만로서만 기능하고자 했다. 그래서, 7절과 같이 자신을 온전히 낮추어 메세지를 전파할 수 있었다.


4 세례 요한이 이르러 광야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And so John came, baptizing in the desert region and preaching a baptism of repentance for the forgiveness of sins.

세례 요한이 이르러 광야에서

세례 요한은 이사야에 기록된 '외치는 자의 소리'로서 이사야에 기록된 대로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고,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는 사명을 수행했다(3절).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세례 요한이 전파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가 이사야에 기록된 '외치는 자의 소리'이다. 세례 요한은 회개의 세례를 전파했다. 회개를 통해 부정한 것을 깨끗하게 만들어 주의 길을 예비하는 사명을 감당한 것이다.

마태복음을 참고하면, 회개에 관한 세례 요한의 대표적인 메세지는 다음과 같다.

(마태복음 3:7-10)
7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9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10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5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The whole Judean countryside and all the people of Jerusalem went out to him. Confessing their sins, they were baptized by him in the Jordan River.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유대 지방은 예전 남유다 왕국의 영토를 가리키며, 예루살렘이 유대 지방에 위치하고 있었다. 세례 요한이 활동한 광야는 유대 지방에 위치하고 있었다.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강한 심령을 가진 세례 요한의 외침은 회개로 인도하는 능력이 있었다. 세례 요한의 능력은 그가 주의 길을 예비하는 사명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서는, 곧 당시에는 이 땅에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서, 오늘날에는 심령에 찾아오시는 예수님을 믿고 맞이하기 위해서는 '회개의 세례'를 통해 정결해지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서, '회개'는 자신의 죄,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후회하고 뉘우치는 정도의 것이 아니라, 삶의 모습과 방식을 완전히 바꾸는 것이다. 회개의 삶에 관한 세례 요한의 가르침이 누가복음에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다.

(누가복음 3:10-14)
10 무리가 물어 이르되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11 대답하여 이르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
12 세리들도 세례를 받고자 하여 와서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13 이르되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 하고
14 군인들도 물어 이르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이르되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


6 요한은 약대털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John wore clothing made of camel's hair, with a leather belt around his waist, and he ate locusts and wild honey.

요한은 약대털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4절에 기록된 '광야에서'의 생활방식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말씀이다. 요한은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로서 오로지 주의 길을 예비하는 데에만 관심을 가졌다. 따라서 약대털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매었을 뿐 입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이 복장은 세례 요한의 광야 생활을 보여주는 동시에 사명에 대한 헌신을 나타낸다.

또한, '털옷과 가죽띠'라는 복장은 성경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열왕기하 1:8)
8 그들이 그에게 대답하되 그는 털이 많은 사람인데 허리에 가죽 띠를 띠었더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그는 디셉 사람 엘리야로다

여기서 '털이 많은 사람'이라는 표현은 '털옷을 입은 사람'을 가리킨다. '털옷을 입고 가죽 띠를 띤 사람'은 바로 디셉 사람 엘리야이다.

열왕기하 1장에서 아합의 후계자 아하시야가 자기 병을 고치기 위하여 에글론의 지방신인 바알세불에게 자기가 언제 회복될 것인지 물어 보라고 사신을 보냈는데, 사신이 돌아와서 말하기를 가는 도중에 털옷을 입고 가죽 허리띠를 두른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이 왕은 결코 회복되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했다고 전하자 이하시야는 그가 '디셉 사람 엘리야'임을 금새 알았다. 이 이야기에서 나타나 있듯이 아하시야 당시에도, 또한 그 이후에도 엘리야는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띤 사람'인 것이다. 세례 요한의 모습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엘리야를 떠오르게 했으며, 이는 또한 엘리야의 사명을 따오르게 했다. 말라기는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먼저 와서 백성들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는 선지자 엘리야를 기록했다.

(말라기 4:5-6)
5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6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유대인들은 엘리야가 먼저 오고난 후에 그리스도가 오실 것이라고 알고 있었으며, 예수님께서도 세례 요한이 곧 말라기에 기록된 엘리야임을 증거해 주셨다.

(마가복음 9:13)
13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가 왔으되 기록된 바와 같이 사람들이 함부로 대우하였느니라 하시니라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이 또한 4절에 기록된 '광야에서'의 생활방식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말씀이다. 요한은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로서 오로지 주의 길을 예비하는 데에만 관심을 가졌다. 따라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을 뿐 먹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았다. 세례 요한이 먹은 음식은 그의 광야 생활을 보여주는 동시에 사명에 대한 헌신을 나타낸다.

여기서, 메뚜기는 '누런 녹색 또는 누런 갈색의 몸을 가지고 있고 뒷다리가 발달하여 잘 뛰는 곤충'을 생각할 수 있고, 석청은 '산속의 나무나 돌 사이에 벌이 모아 놓은 꿀'로 생각할 수 있으나, 당시의 유대 땅의 환경을 생각해 보면 이와는 다른 의미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 6절의 말씀에 기록된 메뚜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에서 말하는 '메뚜기'에 관해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이스라엘에는 두 종류의 '메뚜기'가 있다. 하나는 우리가 알고 있는 곤충인 메뚜기이며, 또 하나는 메뚜기라고 불리는 나무이다. 히브리어로 메뚜기라는 단어가 하루브(harub)인데, 공교롭게도 쥐엄나무라는 단어가 같은 하루브(harub)였기 때문에 쥐엄나무를 메뚜기 나무라고도 불렀다.

쥐엄나무 열매

쥐엄나무 열매는 처음에는 단맛이 나지만 끝맛이 몹시 떫고 텁텁하여 식용으로는 잘 사용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쥐엄나무 열매에 관해서는 유대인들만의 특별한 이미지가 있다. 쥐엄나무 열매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가난하고 궁핍할 때 먹는 열매로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말하자면 보릿고개 때의 '소나무 껍질, 풀뿌리'와 같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누가복음 15장에서 집을 나간 둘째 아들이 돼지와 함께 먹으려 했던 음식이 쥐엄나무 열매였다.

(누가복음 15:16)
16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즉, 세례 요한이 먹던 '메뚜기'는 가난과 궁핍의 이미지를 지닌, 당시 가장 가난하고 궁핍할 때 먹던 쥐엄나무의 열매였을 수도 있다.

- 6절의 말씀에 기록된 석청은 우리가 생각하는 '산속의 나무나 돌 사이에 벌이 모아 놓은 꿀'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운데, 왜냐하면 세례 요한이 활동하던 광야는 꽃이 자라지 않는 곳이었으며, 꽃이 없으니 벌도 없고, 벌이 없으니 꿀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석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에서 말하는 '꿀'에 관해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이스라엘에는 세 종류의 '꿀'이 있다. 첫번째는 우리가 알고 있듯 벌꿀이 있고, 두번째는 종려나무 꿀이며, 세번째는 쥐엄나무 꿀이다. 이 세가지의 꿀 중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했던 꿀은 종려나무의 열매로 만든 종려나무 꿀이다. 성경에서 일반적으로 언급되는 '꿀'은 종려나무 꿀로 생각해도 무방하다.
돌 틈에 끼어 있는 꿀이라는 의미의 석청이 언급되어 있는 것은 유대인들의 율법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유대인들에게는 '모퉁이'라는 뜻의 '페아(peah)'법이 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바에 따른 구제법으로서 가난한 자들과 거류민을 위해 곡식을 거둘 때에 밭 모퉁이를 베지 않고, 떨어진 이삭을 줍지 않는 것이었다.
(레위기 19:9-10)
9 너희가 너희의 땅에서 곡식을 거둘 때에 너는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네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10 네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네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거류민을 위하여 버려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이는 곡식 뿐만 아니라 모든 과일나무에도 적용되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과일나무의 과일을 거둘 때에도 일정 분량은 남겨놓았으며, 과일나무에서 떨어진 것은 줍지 않고 내버려 두어서 가난한 사람들이 주워갈 수 있게 했다.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를 봉양할 수 있었던 것도 페아법에 따라 밭에서 곡식의 이삭을 주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룻기 2:2-3)
2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내가 밭으로 가서 내가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하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갈지어다 하매
3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이와 같이 당시의 농부들은 추수 기간 동안 종려나무의 열매인 대추야자 일정 분량을 거두지 않고 남겨두었는데, 추수 기간이 지나면 열매들이 땅바닥이나 돌 틈에 떨어졌고, 가난한 사람들이 이를 주울 수 있었다.

즉, 세례 요한이 먹던 '석청'은 종려나무의 열매가 떨어져 돌 틈에 끼어 있던 것으로서 가난한 사람들이 주워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 이처럼 세례 요한이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다는 말씀은 유대 땅의 환경을 생각할 때, 가난한 사람들이 먹던 쥐엄나무 열매와 돌 틈에 끼어있던 종려나무 열매를 먹었다는 의미일 가능성이 크다. 세례 요한은 진정으로 광야에서, 진정으로 가난한 상황에서, 자신의 사명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에만 초점을 맞추고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파하던 하나님의 종이며 선지자였다.

 

7 그가 전파하여 가로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And this was his message: "After me will come one more powerful than I, the thongs of whose sandals I am not worthy to stoop down and untie.

최초의 복음서인 마가복음은 세례 요한의 선포로부터 예수님의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마가복음에서 세례 요한은 구약의 예언을 따라 예수님의 오심을 선포하는 역할에만 머물러 있고, 그의 가르침과 관련된 상세한 내용은 나타나 있지 않다. 마가복음에 기록되어 있는 세례 요한의 선포의 말은 예수님의 오심을 선포하는 7-8절이 전부이다.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거니와 그는 성령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시리라"

그러나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는 세례 요한이 가르친 내용이 보다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고,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증거하는 요한의 선포가 보다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가 전파하여 가로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이것은 이사야에 기록된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는 말씀의 성취이다. 약대털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던 세례 요한은 자신을 낮추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심을 알렸다. 이것은 6절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리스도보다 먼저 와서 사람들의 마음을 돌이켜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는 엘리야의 사명이다. 그래서 그는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라고 전파했던 것이다.

나는 굽혀 그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세례 요한은 철저하게 자신을 낮추어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했다. 자신을 '몸을 굽혀 그 분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할 존재'로 낮춤으로써 그리스도를 높였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이 말한 이 낮춤의 모습을 친히 보여주신다. 유월절 저녁식사 자리에서 손수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고 수건으로 닦아주신 것이다.

(요한복음 13:4-5)
4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5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세례 요한의 말은 그리스도의 존귀하심에 대한 경배를 나타낸 것이었다. 그리고, 존귀하신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 대한, 죄인인 사람들에 사랑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신 것이었다.

(요한복음 13:1)
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8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거니와 그는 성령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시리라
  I baptize you with water, but he will baptize you with the Holy Spirit."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거니와 그는 성령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시리라

세례 요한이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알고 전할 수 있었던 것은 요한을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알려준 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1:33)
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9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At that time Jesus came from Nazareth in Galilee and was baptized by John in the Jordan.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마가복음은 그리스도의 사자인 세례 요한이 사명을 따라 행하기 시작한 이후에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공생애를 시작하시는 지점부터 기록을 시작한다. 마가복음은 대략 예수님의 30세부터 기록을 시작한 것이다. 마가복음이 베드로의 설교를 기록했다는 점을 생각할 때, 이 때부터 기록이 시작된 이유는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볼 수 있다.

① 베드로는 예수님이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 탄생과 성장과정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② 베드로는 예수님이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 탄생과 성장과정은 복음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생각했다.


10  물에서 올라 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As Jesus was coming up out of the water, he saw heaven being torn open and the Spirit descending on him like a dove.

이 표현은 베드로의 급한 성격을 드러내는 동시에 설교를 듣는 사람들에게 생생한 감동을 전하는 표현이다.

물에서 올라 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예수님께서 물에서 세례를 받으신 후 성령이 비둘기같이 예수님에게 내려오셨다는 것은 예수님이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분이라는 증거이며, 이는 요한이 전달받은 계시이다.

(요한복음 1:33)
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11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And a voice came from heaven: "You are my Son, whom I love; with you I am well pleased."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직접적으로 예수님이 누구신지, 곧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이며 하나님의 기뻐하는 분이심을 증거하는 음성이 하늘로부터 들려왔다.

예수님의 사역의 시작은 이처럼 예수님이 '내 사랑하시는 아들'이라는 하나님의 증언이 함께 한다. 그리고, 예수님의 사역의 끝, 곧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에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백부장의 고백이 함께 한다.

(마가복음 15:37-39)
37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시니라
38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39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숨지심을 보고 이르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율법에 따르면 한 사람의 증언만으로는 효력이 없다. 두 사람 이상의 증인이 있어야 증언이 인정된다. 예수님의 사역의 시작과 끝에 선언된 증언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에 대한 명백하고 유의미한 증언이다.


12 성령이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At once the Spirit sent him out into the desert,

성령이

예수님께서는 물에서 세례를 받으신 후 비둘기같이 내려오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셨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행하셨다.

이 표현은 베드로의 급한 성격을 드러내는 동시에 설교를 듣는 사람들에게 생생한 감동을 전하는 표현이다.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예수님께서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 또한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증언해주시는 하나님과의 교통 속에서 광야로 가셨다. 세례 요한도 빈 들, 곧 광야에서 자랐고 광야에서 사역을 시작했다.

(누가복음 1:80)
80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 들에 있으니라

예수님께서도 세례 요한과 마찬가지로 광야에서 사역을 준비하셨다.


13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셔서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and he was in the desert forty days, being tempted by Satan. He was with the wild animals, and angels attended him.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셔서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40일을 계셨는데, 이는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을 지냈던 일을 떠올리게 한다. 광야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광야가 어떤 곳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하며, 출애굽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이를 배울 수 있다.

유대광야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먹고 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물을 마시는 것조차 어려운 땅에서, 그들의 삶은 온전히 하나님께 맡겨질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이 원치 않아도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뿐이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만나와 메추라기에 의지했고, 자신들의 걸음조차도 하나님께 맡겼다.
(출애굽기 13:21-22)
21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22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광야에서 예수님께서도 이와 같이 지내셨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금식하시며 철저하고 온전하게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자기를 낮추어 하나님께 전적으로 순종할 준비를 하셨다. 광야가 바로 그러한 장소임을 성경은 또한 분명하게 말씀해 준다.
(신명기 8:2)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마가복음에서는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셨다'라고 간략히 기록했지만,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사단의 시험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사단의 시험은 세상에서 잘 먹고 사는 것, 명예를 얻는 것을 통한 시험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사단의 시험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기셨다.

(마태복음 4:3-10)
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5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6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8 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함을 몸소 보여주시고 가르쳐 주셨다. 이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만나로 살았음과 같다.  

(신명기 8:3)

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40일을 금식하시고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셨지만, 천사들이 수종들었다. 곧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지켜주신 것이다. 이는 광야생활 가운데에서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키셔서 그들의 의복이 헤어지지 않고 그들의 발이 부르트지 않았음과 같다.

(신명기 8:4)

4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성령이 임하셨고, 하늘로부터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라는 말씀을 들렸다. 그리고, 광야에서 40일을 보내시며 금식하시고, 사단의 시험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기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아들임을 이루시고 완성하셨다.

또한, 세례를 받으시고, 광야에서의 시험을 이기시기까지의 예수님의 행하신 모습은 우리로 하여금 어떻게 예수님 자신과 같이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아들이 될 수 있는지를 알려주신다. 

 

14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After John was put in prison, Jesus went into Galilee, proclaiming the good news of God.

요한이 잡힌 후

요한은 헤롯이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에게 장가 든 것이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가 잡혀서 옥에 갇혔다. 

(마가복음 6:17-28)
17 전에 헤롯이 자기가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에게 장가 든 고로 이 여자를 위하여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잡아 옥에 가두었으니
18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사명을 시작하신다.


15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The time has come," he said. "The kingdom of God is near. Repent and believe the good news!"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예수님께서 사명을 시작하시면서 가장 먼저 외치신 말씀이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것이었다.


16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As Jesus walked beside the Sea of Galilee, he saw Simon and his brother Andrew casting a net into the lake, for they were fishermen.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마가복음의 말씀을 설교했던 베드로, 곧 시몬은 그 형제 안드레와 함께 이 때 갈릴리 해변에서 예수님을 처음 만났다.

마가복음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난 때부터 시작된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베드로는 이 때부터의 예수님만 알고 있다.

마가복음에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지 않은 것은 베드로가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이야기를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는 베드로의 설교나 베드로의 서신에서도 예수님의 탄생은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어부는 '물고기를 낚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다. 물고기를 낚아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시몬과 안드레의 일이었다.

갈릴리 호수는 남북으로 21km, 동서로 12km, 둘레가 53km에 달하는 큰 호수이다. 바다로 불리기도 할 정도의 크기이다. 이 주변에는 많은 어부들이 있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 수많은 어부들 중에 시몬과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셨다.

※ 마가복음에는 '곧' 외에 '그리고'라는 단어가 매우 빈번하게 사용되어 있는데, 예를 들어 16-20절의 경우 다음과 같이 10회 사용되어 있다.

(마가복음 1:16-20)
16
(그리고)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리고)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17
(그리고)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그러면)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18
(그리고) 곧 그물을 버려 두고 따르니라
19
(그리고)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리고)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그리고) 그들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20
(그리고) 곧 부르시니 (그리고)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 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

 

17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Come, follow me," Jesus said, "and I will make you fishers of men."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를 따라오너라

수많은 어부들 중에서 시몬과 안드레를 보신 예수님께서는 '나를 따라오너라'라고 말씀하셨다. 누가복음에 따르면 시몬과 안드레는 밤새 고기잡이를 했지만, 잡은 것이 없었던 어부, 어부로서는 초라한 어부였다.

(누가복음 5:5)
5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시몬과 안드레를 선택하여 부르셨다.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낚는 어부'라는 표현을 사용하셨다. 시몬과 안드레가 어부였기 때문에 그들이 이해하기 쉬운 개념이었다. 이는 또한, 유대인에게 이해하기 쉬운 개념이었다. 이는 에스겔 47장에 기록된 말씀, 곧 성전으로부터 흘러 나온 물이 아라바 바다에 이르고 이 물로 바다가 되살아나 고기가 심히 많아지며 강 가에 어부가 서서 그물을 치게 될 것이라는 말씀에서 비롯된 개념으로 여겨진다.

(에스겔 47:8-10)
8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쪽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 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
9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10 또 이 강 가에 어부가 설 것이니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까지 그물 치는 곳이 될 것이라 그 고기가 각기 종류를 따라 큰 바다의 고기 같이 심히 많으려니와

이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고기가 심히 많아지는 때, 그래서 강 가에 어부들이 서는 때는 이스라엘의 회복의 때이며 그리스도의 때인 것이다.

여기서 '사람을 낚는 어부'의 본래 표현(헬라어 원문)은 '알리에이스 안드로폰', 곧 '사람의 어부'이다. 어부는 생계 유지, 곧 자신의 유익을 목적으로 물고기를 낚지만, '사람의 어부'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사람을 낚는 어부이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본래 '사람의 어부가 되게 하리라'는 말씀이며, 이 말씀은 '너희들을 전도자가 되게 해서 사람들을 살리게 하겠다, 내 제자가 되게 해서 사람들을 살리는 복음을 배우게 하겠다, 사도의 삶을 살게 해서 사람들을 살리는 복음을 전하게 하겠다'는 의미이다. 예수님께서 이 크고 놀라운 사명을 위해 바다에 그물을 던지던 어부를 부르신 것은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절대적이고 주권적인 선택이었다.


18 그물을 버려 두고 좇으니라
   At once they left their nets and followed him.

이 표현은 베드로의 급한 성격을 드러내는 동시에 설교를 듣는 사람들에게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힘이 있는 말이다. 또한, 이유나 배경에 대한 설명없이 다짜고짜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고민없이 순종한 베드로와 안드레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힘이 있는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제자됨의 의미, 곧 즉각적인 순종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누가복음 9장에도 예수님께서 '나를 따르라'고 부르신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나, 그들은 베드로와 안드레와는 달리 즉각적으로 순종하지 않을 뿐더러 세상일을 핑계삼아 순종을 미룬다.
(누가복음 9:59-62)
59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60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61 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62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베드로와 안드레는 직접적으로 제자됨의 의미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물을 버려 두고 좇으니라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불러주심에 감동하여 말그대로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님을 쫓는다. 잡힌 물고기가 많아서 이 그물은 찢어진 상태의 그물이었으며, 동료의 배에까지 물고기가 가득한 상태였다.

(누가복음 5:6-7)
6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7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그러나, 베드로는 육지에 닿자마자 '곧' 배와 그물을 비롯한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른다.

(누가복음 5:11)
11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19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저희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When he had gone a little farther, he saw James son of Zebedee and his brother John in a boat, preparing their nets.

조금 더 가시다가

예수님께서는 그물을 버려둔 시몬과 안드레가 따르는 가운데 갈릴리 해변을 조금 더 걸으셨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저희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갈릴리 호수 주변의 수많은 어부들 중에서 시몬과 안드레를 부르신 예수님께서는 이제 배에서 그물을 깁던 야고보와 요한을 보셨다.


20 부르시니 그 아비 세베대를 삯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 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
   Without delay he called them, and they left their father Zebedee in the boat with the hired men and followed him.

곧 부르시니

'곧'이라는 표현은 예수님께서 야고보와 요한을 보시고 부르시는 데에 대해 사용되었다. 배에서 그물 깁던 그들을 보시자마자 부르신 것이다. 특별히 요한은 자신을 가리켜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라고 표현할 정도로 예수님과 가까운 제자가 된다.

(요한복음 19:26)
26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이렇게 사랑하시는 제자가 될 요한과 야고보 형제를 보신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그들을 부르신 것이다.

그 아비 세베대를 삯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 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야고보와 요한은 자기들의 생계수단이었던 배를 버렸고, 당연히 그물도 버렸을 것이며, 함께 일하던 삯꾼들도 버렸고, 아버지인 세베대 또한 버렸다. 이는 누가복음에 나타난 자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것이며, 다시 한번 제자됨의 의미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누가복음 9:61-62)
61 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62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또한, 이 장면은 아브라함이 부름을 받던 순간과 매우 흡사하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름에 순종하여 자신의 삶의 울타리였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났다.

(창세기 12:1, 4)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하나님의 부름에 순종한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었으며, 예수님의 부름에 순종한 시몬과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은 복음의 사도가 되었다.

 

21 저희가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They went to Capernaum, and when the Sabbath came, Jesus went into the synagogue and began to teach.

저희가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님께서는 가버나움으로 가셔서 생활하셨다.

(마태복음 4:13)
13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가버나움은 스불론 지파와 납달리 지파의 땅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당시의 사람들에게 이 땅은 어둠의 땅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서 사셨음은 어둠의 땅에 빛이 비침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마태복음 4:14-16)
14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15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16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시몬과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버나움으로 가셨다.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이후의 일들의 배경이 된 이 날은 '안식일'이었다. 안식일에 예수님께서는 회당에 들어가서 하나님 나라의 말씀을 가르치셨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① 이 날이 안식일이라는 점, ② 이 날에 무엇을 가르치셨는가라는 점이다.

먼저, 이 날에 무엇을 가르치셨는가와 관해서는 15절에 나타난 바와 같이 예수님께서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복음을 전하셨으니 이를 가르치셨을 것으로 짐작 할 수 있다. 누가복음은 예수님께서 이 무렵에 전하신 말씀을 보다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누가복음 4:16-19)
16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17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때가 찼고'라는 말씀은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라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로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구원의 사역을 시작하시는 때가 된 것이다. 그리고 이 때에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충만하셔서 사역을 시작하셨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라는 말씀은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라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 나라는 포로되고 눌린 삶을 벗어나 자유함을 누리는 나라이며, 눈 먼 삶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보고 사는 나라이다. 이 하나님 나라는 요한이 보고 기록했다.

(요한계시록 22:3-5)
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4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말씀은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으로부터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의 은혜의 때가 전파되었으니 이 은혜를 이루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복음인 것이다.

이제, 이 가르침을 안식일에 가르치셨음을 주목해야 한다. 이는 '때가 차서 가까이 온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곧 '안식'임을 가리키는 것이다.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후 사단은 하나님의 안식을 깨뜨렸다. 하나님의 안식은 반드시 회복되어야 하며,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이를 회복시키실 것이다. (참고)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이루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22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The people were amazed at his teaching, because he taught them as one who had authority, not as the teachers of the law.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베드로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정작 예수님께서 어떤 말씀을 가르치셨는지는 말하고 있지 않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에는 관심이 크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내며, 비판적으로 보자면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베드로의 무지함을 드러낸다.

이 때, 예수님의 교훈을 들은 뭇 사람의 반응은 누가복음에 나타나 있다.

(누가복음 4:20-22)

20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21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22 그들이 다 그를 증언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을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뭇 사람들이 듣기에 예수님의 말씀은 권세있는 자의 가르침과 같이 권위가 있었다. 권위는 다른 사람을 이끄는 힘, 복종시키는 힘을 의미하며, 이는 예수님의 말씀에 공감하고 감동받았음을 가리킨다. 화려한 언변, 또는 질책을 통해 사람을 옭아매는 서기관들의 가르침과 같지 않았음을 나타낸다.


23 마침 저희 회당에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질러 가로되
   Just then a man in their synagogue who was possessed by an evil spirit cried out,

마침 저희 회당에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질러 가로되

회당에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있었다. 예수님께 치유함을 받은 병자들이나 귀신들린 사람들은 대부분 구체적인 인적사항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 이유는 몇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① 너무 많아서 일일이 기록하기 어려웠다.

② 예수님의 관심사는 그들을 치유하고 그들의 죄를 사해주는 것 뿐이었기 때문에 상세히 언급할 필요가 없었다.

③ 그들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오늘날 성경을 읽는 사람 자신이 곧 그들인 것이다.


24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What do you want with us, Jesus of Nazareth? Have you come to destroy us? I know who you are--the Holy one of God!"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소리지른 것은 실은 그 속의 귀신이 소리지른 것이다. 귀신은 예수님에 관해 이미 알고 있었다.

나사렛 예수여

예수님께서 어디서 지내셨는지, 혹은 예수님에 관한 구약의 예언을 알고 있다.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예수님을 두려워하고 있으며, 이는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예수님을 두려워한 이유이다. 이는 예수님께서 누구신지, 어떤 권세를 갖고 계신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명확하게 알고 외치고 있다.


25 예수께서 꾸짖어 가라사대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Be quiet!" said Jesus sternly. "Come out of him!"

예수께서 꾸짖어 가라사대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예수님께서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귀신을 꾸짖으신다. 귀신이 예수님을 두려워한 이유, 예수님께서 누구신지, 어떤 권세를 갖고 계신지를 예수님께서 직접적으로 명확하게 보여주고 계신다.


26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으로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The evil spirit shook the man violently and came out of him with a shriek.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으로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어떤 말씀을 가르치셨는지는 말하고 있지 않지만, 회당에 있던 귀신들린 사람의 언행은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베드로에게는 이 일이 무척 인상깊게 느껴졌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기록 덕분에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올 때의 현상을 알 수 있다.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올 때는 사람으로 격렬하게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비명같은 큰 소리를 지른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심으로써 '안식'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셨다.

그리고, 회당에 있던 귀신들린 사람으로부터 귀신을 쫓아내심으로써 포로되고 눌린 삶을 벗어난 자유를 보여주셨다. 죄의 포로, 죄악에 눌린 삶은 사단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사단은 하나님의 안식을 깨뜨린 원수이다. 예수님께서는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심으로써 '안식'의 회복을 보여주신 동시에, 앞으로 어떤 일을 행하실지, 사단이 어찌될 것인지를 알려주셨다.


27 다 놀라 서로 물어 가로되 이는 어찜이뇨 권세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을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The people were all so amazed that they asked each other, "What is this? A new teaching--and with authority! He even gives orders to evil spirits and they obey him."

다 놀라 서로 물어 가로되 이는 어찜이뇨 권세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을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회당에서 예수님께서 꾸짖으실 때 귀신이 순종하고 귀신들린 사람에게서 떠나는 일을 바라본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그들은 더러운 귀신들이 순종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새 교훈'으로 생각하고 기적 자체에만 관심을 가졌을 뿐 귀신이 순종하는 대상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지 못했다.


28 예수의 소문이 온 갈릴리 사방에 퍼지더라
   News about him spread quickly over the whole region of Galilee.

예수의 소문이 곧 온 갈릴리 사방에 퍼지더라

'권세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을 명한즉 순종하는도다'라는 예수님의 기적의 소문은 금새 갈릴리 온 지역에 퍼졌다.


29 회당에서 나와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들어가시니
   As soon as they left the synagogue, they went with James and John to the home of Simon and Andrew.

회당에서 나와 곧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들어가시니

예수님은 제자로 부르신 어부들, 시몬과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움직이신다. 회당에서 나오신 예수님은 시몬과 안드레가 함께 살고 있는 집으로 들어가신다.


30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웠는지라 사람들이 그의 일로 예수께 여짜온대
   Simon's mother-in-law was in bed with a fever, and they told Jesus about her.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웠는지라

시몬은 기혼자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장모를 모시며 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때, 시몬의 장모는 열병으로 누워있었다. 이 열병은 말라리아나 장티푸스, 폐렴 등 고열이 발생하는 병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사람들이 곧 그의 일로 예수께 여짜온대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있다는 사실을 동네 사람들이 예수님께 말씀드렸다. 동네 사람들이 예수님께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에 관해 말씀드린 까닭은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볼 수 있다.

① 베드로가 예수님의 제자로서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것을 동네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었다.

귀신을 쫓아낸 예수님이 병도 고칠 수 있는지 보고자 하였다. 그 일은 했는데 이 일은 할 수 없는가라는 이와 같은 말과 생각은 예수님을 향한 유대인들의 끊임없는 질문이었다. 

(요한복음 11:37)
37 그 중 어떤 이는 말하되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하더라

이는 그들이 예수님께 표적을 구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예수님께 지속적으로 더 큰 표적, 더 확실한 표적, 더 분명한 표적을 구했다. 따라서 유대인들에게는 표적이 의미가 없었다. 보고서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도 그들에게 표적을 주고자 하지 않으셨다.

(마가복음 8:11-12)
11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를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
12 예수께서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시며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 표적을 주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31 나아가사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여자가 저희에게 수종드니라
   So he went to her, took her hand and helped her up. The fever left her and she began to wait on them.

나아가사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으로 누워있던 환자의 모습은 어떠했겠는가를 생각해 보면 이 말씀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열병의 병명으로 짐작되는 말라리아나 장티푸스의 경우를 예로 생각해 볼 수 있다.

- 말라리아: 전형적인 증상은 두통, 피곤, 근육통, 식욕 부진의 초기 증상이 나타난 후, 수일 내에 오한과 고열, 설사, 복통이 발생하여 체온이 39-41℃로 상승하며 심하게 춥고 떨리는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열같은 경우에는 처음에는 매일 불덩이처럼 나게 되지만 피료를 하지 않고 방치하면 점점 각기 다른 주기성들을 보이게 되는데, 열대 말라리아 같은 경우에는 열이 매일 나고, 삼일열 말라리아나 난형열 말라리아 같은 경우에는 48시간 주기로 나타나며, 사일열 말라리아는 72시간에 걸쳐서 나타난다. 열이 심하기 떄문에 열 발작이라는 것이 발샌한다. 열 발작은 크게 오한기, 발열기, 발한기가 있다.
오한기: 손이나 온 몸에 힘이 없어서 말하기 힘들고 오한이 발생하게 되며 약 30분-1시간 정도 지속된다.
발열기: 40도 이상의 고열이 발생하고 탈수증상을 보이며 두통과 갈증이 심해진다.
발한기: 체온이 급격하게 정상수치로 변하게 되고 온 몸에 땀이 나며 이로 인해 지쳐서 잠이 들게 된다.

- 장티푸스: 우리나라에서 욕설로 사용되는 염병이 장티푸스이다. 옛날에는 홍수나 기근 등이 발생하면 이 병이 돌아 사망자가 많이 발생하는 무서운 전염병이었다. 초기에는 고열, 오한, 두통이 나타나서 감기로 생각하다가 며칠 뒤부터 복통, 가슴에 붉은 반점 등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고열이 발생하기 전에 수일간 장염 증세로 설사를 하는 경우가 있으며 변비가 생기기도 한다. 장티푸스의 특징은 발열로서 1주 정도에 걸쳐 열이 서서히 올라가다가, 2~3주가 되면 지속적인 고열에 시달리며, 발열을 치료하지 않으면 4-8주까지 지속될 수 있다. 치료를 받지 않은 채로 3-4주 가량 지나면 장천공으로 인한 심한 복통이나 위장 출혈 등의 합병증 위험이 높아지며 이는 복막염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고열이 심해지면 머리카락이 거의 다 빠지는 탈모현상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그 모습이 흉해서 옛날 사람들에게는 이 병의 대표적 이미지로 여겨졌다. 모근이 상하기 때문에 병이 나아도 머리카락이 잘 회복되지 않는다.

예수님께서는 이와 같은 상태로 누워있던 시몬의 장모의 손을 잡아 일으키셨다. 아마도 증상의 고통스러움과 전염성을 우려하여 누구도 가까이 가려고 하지 않던 시몬의 장모에게 가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는 것이 예수님의 치료행위였다.

열병이 떠나고 여자가 저희에게 수종드니라

예수님의 손길에 열병은 떠났고, 예수님의 일으키심에 시몬의 장모는 곧 기력을 회복하여 수종들었다. 이제 시몬의 장모는 사위가 예수님의 제자로서 예수님을 따라 다니더라도 가정 내에서 그의 조력자가 될 것이다.

이 지점에서 안식일에 이루어진 일들을 통해 '안식'이 어떤 것인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심으로써 '안식'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셨다. 그리고, 회당에 있던 귀신들린 사람으로부터 귀신을 쫓아내심으로써 포로되고 눌린 삶을 벗어난 자유를 보여주셨다. 또한,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서 시몬의 장모를 열병을 고쳐주심으로써 회복, 곧 눈 먼 자가 다시 보는 역사를 보여주셨다. 이 일 가운데, 시몬의 장모는 예수님의 손길에 열병이 떠났고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수종들었다. 복음을 듣게 된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손을 잡고 일으켜 주시는 것이다. 복음을 믿는 사람,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예수님의 손을 잡음으로써 열병이 떠나게 된다. 이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어 하나님의 안식에 참여하게 된 사람은 예수님을 수종들며 살게 된다. 요한계시록은 이러한 안식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

(요한계시록 22:3-5)
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4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32 저물어 해질 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That evening after sunset the people brought to Jesus all the sick and demon-possessed.

저물어 해질 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있다가 치유되었다는 소문이 근방에 전해졌다. 이 날은 안식일이었기 때문에 안식일이 끝나는 해질 때가 되어서야 사람들이 모여들 수 있었다. 모여든 사람들은 인근의 모든 병자와 귀신들린 사람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왔다. 


33 온 동네가 문 앞에 모였더라
   The whole town gathered at the door,

온 동네가 문 앞에 모였더라

인근의 모든 병자와 귀신들린 사람들, 그들을 데리고 온 사람들, 또한 이들을 보러 온 사람들로 인해 말그대로 '온 동네'가 시몬과 안드레의 집 문 앞에 모였다. 이제 시몬과 안드레의 집은 회당보다 더 유력한 장소가 된 것이다. 그 까닭은 그 집에 예수님이 계셨기 때문이다.


34 예수께서 각색 병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어쫓으시되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시니라
   and Jesus healed many who had various diseases. He also drove out many demons, but he would not let the demons speak because they knew who he was.

예수께서 각색 병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어쫓으시되

예수님께서는 각색 병든 많은 사람을 고치셨고, 또한 많은 귀신을 내어쫓으셨다. 마태복음은 예수님께서 병든 사람들을 모두 다 고치셨고, 귀신들을 '말씀으로' 쫓아 내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마태복음 8:16)
16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마태복음은 이 모든 치유의 사역이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이루신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마태복음 8:17)
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이는 이사야의 다음의 말씀을 참고할 수 있다.

(이사야 53:4)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예수님께서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시는 일, 곧 우리의 질고를 지시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실 때, 예수님께로부터는 능력이 나갔다. 이는 5장에 기록된 혈루증을 앓아 온 여자가 나음을 받는 사건에서 알려진 사실이다.

(마가복음 5:25-30)
25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26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27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28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29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30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예수님께서 우리의 질고와 슬픔을 당하실 때, 예수님께로부터는 능력이 나가는 것이다. 그만큼 그 능력을 통해 우리의 질고와 슬픔이 예수님께로 옮겨진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시니라

위의 24절에 기록된 바와 같이 귀신들은 예수님께서 누구신지, 어떤 권세를 갖고 계신지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귀신들이 예수님이 누구신지, 어떤 권세를 갖고 계신지를 말하도록 허락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귀신을 내어 쫓으시며, 귀신들이 말하는 것도 허락하지 않으시는 권세, 곧 하나님의 아들의 위엄과 권세를 지니고 계셨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 맡겨진 구원의 사역, 곧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구원의 사역을 완성하기 위한 시기까지 (대략 2년반의 기간) 자신이 누구인지를 말하지 못하도록 귀신들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금하셨다.

예수님이 누구이신가, 그리고 사람들이 예수님이 누구이신가를 알게 되는 것은 예수님의 사역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35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Very early in the morning, while it was still dark, Jesus got up, left the house and went off to a solitary place, where he prayed.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예수님께서는 이른 새벽, 아직 어두울 때에 일어나셨다. 각색 병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고 많은 귀신을 내어쫓으시는 일 자체도 매우 힘든 일이었을 것이며, 또한 사람들이 저물어 해질 때에 모이는 경우라면 일찍 주무실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이른 새벽, 아직 어두울 때에 일어나셨다. 반드시 하셔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9-10절에는 예수님께서 사역을 시작하실 때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신 일이 기록되어 있다.

(마가복음 1:9-10)
9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10 곧 물에서 올라 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누가복음은 이 부분을 확대하여 보다 상세히 기록했다.

(누가복음 3:21)
21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실 때 기도하셨다. 기도하실 때에 성령이 임하셨고, 하늘로부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누가복음 3:22)
22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기도를 통해 성령의 충만을 받으시고, 하나님과 교통하셨음을 볼 수 있다. 이 땅에서의 사역을 기도로써 시작하신 것이다.

그리고, 이곳의 말씀에서는 사역을 감당하시면서도 계속적으로 기도하셨음을 볼 수 있다. 시간은 새벽 미명, 장소는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셨다. 새벽 미명의 시간은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 곧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 창조해 나가시는 일, 병자와 귀신들린 자들을 새롭게 만드시는 일을 시작하시기 전의 시간이며, 한적한 장소는 사람들이 없는 장소, 곧 하나님과 함께 하시기에 가장 좋은 장소이다. 이는 곧 '태초'를 나타내며,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하나님 아버지와 기도로써 교통하셨음을 나타낸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도 그 기도를 계속하신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상에서 영혼을 하나님께 부탁드리는 기도로써 이 땅에서의 모든 사역을 마치셨다.

(누가복음 23:46)
46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예수님께서는 사역의 시작을, 그리고 사역을 하시는 동안에, 그리고 사역을 끝을 기도로써 감당하셨다.


36 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Simon and his companions went to look for him,


37 만나서 가로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and when they found him, they exclaimed: "Everyone is looking for you!"


38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Jesus replied, "Let us go somewhere else--to the nearby villages--so I can preach there also. That is why I have come."


39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저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어쫓으시더라
   So he traveled throughout Galilee, preaching in their synagogues and driving out demons.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21절에서 가버나움과 관련하여 논한 바와 같이 이 말씀은 곧 '빛'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흑암' 가운데 놓인 '사망의 그늘진 땅'을 두루 다니셨음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세상의 빛이시며, 갈릴리는 흑암 가운데 놓인 사망의 그늘진 땅, 곧 죄악으로 인해 죽음을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의 세상을 대표한다.

저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어쫓으시더라


40 한 문둥병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리어 간구하여 가로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A man with leprosy came to him and begged him on his knees, "If you are willing, you can make me clean."


41 예수께서 민망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Filled with compassion, Jesus reached out his hand and touched the man. "I am willing," he said. "Be clean!"


42 문둥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진지라
   Immediately the leprosy left him and he was cured.

이 표현은 베드로의 급한 성격을 드러내는 동시에 설교를 듣는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힘이 있는 말이다. (실제로 곧 문둥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께끗해졌을 수도 있지만)


43 엄히 경계하사 보내시며
   Jesus sent him away at once with a strong warning:

이 표현은 베드로의 급한 성격을 드러내는 동시에 설교를 듣는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힘이 있는 말이다. (실제로 곧 보내셨을 수도 있지만)


44 가라사대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네 깨끗케 됨을 인하여 모세의 명한 것을 드려 저희에게 증거하라 하셨더니
  "See that you don't tell this to anyone. But go, show yourself to the priest and offer the sacrifices that Moses commanded for your cleansing, as a testimony to them."

가라사대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예수님께서는 문둥병이 나은 사람에게도 누가 병을 고쳐주었는지 말하도록 허락하지 않으셨다. 이것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어떤 권세를 갖고 계신지를 나타내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 맡겨진 구원의 사역을 완성하기 위한 시기까지 (대략 2년반의 기간) 사람들과 귀신들에게 자신이 누구인지를 말하지 못하도록 하셨다.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나병이 나은 사람은 규례에 따라 제사장에게 진찰을 받아야 한다.  

(레위기 14:2-3)
2 나병 환자가 정결하게 되는 날의 규례는 이러하니 곧 그 사람을 제사장에게로 데려갈 것이요
3 제사장은 진영에서 나가 진찰할지니 그 환자에게 있던 나병 환부가 나았으면

네 깨끗케 됨을 인하여 모세의 명한 것을 드려 저희에게 증거하라 하셨더니

나병이 나은 사람을 위해 제사를 드릴 제물에 관한 규례와 제사장이 행할 일에 대한 규례가 있었다. 

(레위기 14:4)
4 제사장은 그 정결함을 받을 자를 위하여 명령하여 살아 있는 정결한 새 두 마리와 백향목과 홍색 실과 우슬초를 가져오게 하고
(레위기 14:10)
10 여덟째 날에 그는 흠 없는 어린 숫양 두 마리와 일 년 된 흠 없는 어린 암양 한 마리와 또 고운 가루 십분의 삼 에바에 기름 섞은 소제물과 기름 한 록을 취할 것이요


45 그러나 그 사람이 나가서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하니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오직 바깥 한적한 곳에 계셨으나 사방에서 그에게로 나아오더라
   Instead he went out and began to talk freely, spreading the news. As a result, Jesus could no longer enter a town openly but stayed outside in lonely places. Yet the people still came to him from everyw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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